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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김동길)

조 쿠먼 2019. 6. 30. 05:38

◆2019/06/29(토)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425)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병원에만 가면 모든 질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80, 90대 노인이 되고

나면 신체의 균형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넘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발가락에 조그만 화상을 입었는데도 그 상처가 빨리 아물지를 않는다.

 

항상 글을 쓰고 강연을 해야 했던 이 노인이 이제는 글도 후배들이 받아 적어

줘야 하고, 늘 하던 강연이나 설교도 이제 그만해야 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어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예전에는 당장 노트에 몇 줄 적어 놓으면 그것

으로 충분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생각이 떠올라

도 적어 둘 처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사무실에서 손가락 하나만한 크기의 녹음기를 마련해주면서 “여

기에 녹음을 하시면 됩니다”라는 부탁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별로 써보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지경에 다다르기 전에는, 밤이건 낮이건 외롭다는 생각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시간만 있으면 책도 읽고 음악도 즐겨 들었다. 그리고 CNN, BBC같

은 외국 TV채널을 틀어 놓고 그것만 열심히 시청하고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

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방송을 보고 듣고 싶은 욕망도 많이 줄어들었고, 책을 읽고

싶은 생각도 그다지 없고, 신문마저 펴 볼 마음조차 들지 않는 때가 많다.

 

나는 이제 이럭저럭 세상을 등지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이

큰 집에서 나 혼자 밤을 지새야하는 내 신세를 탓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요즘은 밤이 되는 것이 겁이 나기도 한다.

 

아, 나는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생의 가는 길이 다 이런 것 아닐까.

후배들이여 명심하라, 노인의 신세는 다 이런 것이다.

 

김동길

 

 

 

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80)현승종

 

 

 

우리나라의 24대 국무총리를 지낸 현승종은 평안남도 개천 사람이다. 평양

고보 출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중에 한 분이다. 내가 한때 조그만 야당

의 국회의원 노릇을 하던 때, 현 선배는 국무총리였다.

 

현총리가 국회에 출석 할 때마다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야당의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원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나가 현선배에게 인사

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오곤 하였다.

 

나는 여당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두드러진 교육가요,

사회운동에 헌신해온 현승종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민남규라는 사업가는 고려대학 출신이다. 그는 자기가 결혼할

때 은사이던 현승종에게 주례를 부탁한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하면서 해마다

꼭 한번 주례를 맡아준 그 은사를 찾아가본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현승종은 민남규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시대에 가장 주례를 부탁하고 싶은 분이 누군가라고 물으면, 고려 대학 출신

이 아니더라도 많은 젊은이들이 현승종에게 주례를 부탁하고 싶었다고 하였

을 것이다. 그는 진정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어른이었다.

 

그는 1919년 1월 26일에 출생하였다. 그렇다면 올해 만 100세가 된 것이다.

요새 난 바깥출입이 뜸하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 그 어른이 나타나는 때는 없다.

평고를 졸업한 그는 곧 경성제국대학 법과에 입학 하였는데 당시에는 가장 우

수한 학생들이 경성대를 지망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경성제대를 졸업하면 출세의 길이 잘 열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뒤에 해방의 날이 찾아왔다. 그는 일본군에 징발되어

일본 군대에서 근무 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1946년부터 30년 가까이 고려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 기간

중에도 군대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여 한 바 있다.

 

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자진하여 한국전쟁에 뛰어들었고 1952년 10월에는

공군 소령으로 진급하기도 했다. 그의 삶에 어느 때나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이

지극해서 만난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최선을 다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현승종은 고려대학에 적을 둔 30년 가까운 세월 중에 교양학부장, 법률행정

연구소장 그리고 중앙 도서관장직을 맡았다. 그 뒤에 유네스코 한국위원도

지냈고 고려대 독일문화 연구소장 자리도 맡았었는데 1974년 성균관대학

총장으로 초빙되어 고려대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80년에는 헌법개정 심의위원에 임명되었고 85년에는 민족통일 중앙

협의회 회장으로 추대 되기도 하였다.

 

성균관 대학 총장 일을 6년 보고 나서 그는 다시 1984년부터 한림대학교수,

동 대학에서 학장, 총장을 역임하였다. 신설된 한림대학이 춘천에 자리잡고

있어서 유능한 교수들을 모시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현승종의 뒤를 이어 그 멀고 먼 춘천까지 출퇴근하고 우수한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덕망이 높던 현승종은 다른 교수들에게도 존경받는 인물이어서

한때 한림대학교의 명성은 자자하였다.

 

고려대학교 재임 중 그는 그 대학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3년 뒤

에는 타이완 정치 대학교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승종은 학계와 교육계

에서 그 공로를 인정 받아 국민훈장 동백장, 충무무공 훈장, 성곡학술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교과서처럼 학생들이 많이 읽던 그의 저서 〈로마법 개론〉, 〈로마법 원론〉,

〈법사상사〉, 〈서양법제사〉 등은 학생들 사이에서 명저로 여겨졌다. 그의

아호는 춘재였고, 그의 성품은 선비다워 그의 얼굴과 몸가짐에는 그런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요새는 거의 만날 일이 없는 현선배이지만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댁으로 방문

하여 후배가 선배를 대하는 예의를 갖추고자 금일봉을 드렸더니 그는 이렇게

나를 타일렀다 “김선생, 나를 방문해 주는 것은 백번 고마운데 이렇게 봉투를

놓고 가면 나는 마음이 괴로워요.

 

내가 노후를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으니 아예 이런 일을 하지 마세요.” 그의 말

과 표정이 하도 공손하였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었다.

 

그러나 현선배의 건강도 점점 나빠지고 사모님을 잃은 뒤에는 더 몸이 허약해

졌으니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모든 유명인사들은 나이가 많아 은퇴하고

나면 그 이름도 차차 잊혀지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현선배를 생각하면 나는 ‘백세청풍’이라는 아름다운 글귀를 되새기게 된다. 확실

히 현선배는 우리들에게 맑은 바람이 되어 우리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 2019/06/28(금) 종교는 아편인가?(424)

 

 

종교는 아편인가?

 

러시아의 1917년 무산자 혁명의 주동자였던 레닌이 한 말이라고 나는 기

억하고 있다. 레닌이 아니라도 어떤 마르크스 레닌주의자가 한 말인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당시의 서구 문화를 이끌어 온 서구인들에게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 폭

언에 가까운 한 마디였다. “종교는 미신이다”라는 말은 이미 계몽주의자들이

흔히 하던 말이기 때문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당시 기독교인들의 입장

에서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말은 몹시 사납게 들렸을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낮도깨비들이 등장하여 상식에 벗어난 말들을 거리낌없이

뇌까린다면 ‘미신’이라는 말이 족히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가 ‘아편’이라

는 말은 상식을 초월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오늘 곰곰이 생각하면 종교가 아편의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 아닌가.

큰 수술을 하는 의사는 반듯이 환자의 몸을 마취하고야 집도할 수 있다. 그

렇다면 마약은 오늘의 마취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환자의 고통이 육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평화가 진정 필요하다고 하면, 종교로써 그 아픔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종교를 아편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좀 잘못된 일이 아닐까.

 

마취제를 쓰지 않는 큰 수술은 없다. 따라서 종교 없는 행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동길

 

 

 

◆2029/06/25(화) 순교 정신과 순국 정신 (421)

 

순교 정신과 순국 정신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한번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평균 수명 보다도 짧게 살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평균 수명을 훨씬

넘어서까지 오래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언제 이 세상을 떠

나던지 별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뒤에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할 일이 하도 많아서

별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생년월일이 호적에 적힌 대로라고 믿고 살아야 하는데 내일 무슨 일이 있을

지, 언제 떠나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사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이 들어들면서 신체기능이 쇠퇴해 짐에 따라 각가지 병이

들어 요를 깔고 누어서 앓다가 죽게 마련이다. 물론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하

고 화산이 터지거나 홍수 등의 천재지변으로 졸지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더구나 요즈음은 이념이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총기 사용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죽음인가. 첫째

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그 다음으로는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

람이 가장 위대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김대건 신부처럼, 안중근 의사처럼, 윤봉길 의사처럼, 그렇게 가는 사람들의

죽음이 가장 가치 있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