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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큰손들 한국 주식 패싱… 미국 주식, 금괴 산다

조 쿠먼 2019. 7. 15. 06:24

강남 큰손들 한국 주식 패싱… 미국 주식, 금괴 산다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증시 뭉칫돈, 어디로 갔나

 

"지난 1997년 미국의 아마존이 처음 상장했을 때 1억원을 투자했다면 지금

얼마가 됐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1200억원입니다."

얼마 전 한국투자증권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개최한 신상품 설명회.

이날 모인 50~60대 자산가 20여명은 1시간 남짓한 강연에 귀를 기울이며

눈빛을 반짝였다.

 

박진환 한국투자증권 부장은 "요즘 강남에선 한국 주식이 싸니까 투자해 보

라고 권유해봤자 심드렁한 반응뿐"이라며 "반면, 사상 최고치를 계속 갈아

치우는 미국 주식 얘기를 하면 모두 관심 있어 하고 투자에도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저가 매수 노리던 돈마저 실종

최근 거래 대금이 작년의 반 토막 수준이 날 정도로 국내 증시의 활력이 떨어

지면서 실망한 강남 큰손들은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 들어 유망한

해외 주식을 사겠다며 빠져나간 돈은 월평균 2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작년 하반기(7~12월)엔 1조5000억원 수준이었다. 안예희 KB증권 도곡스타

PB센터 부지점장은 "거액 자산가들은 달러 자산으로 보유하는 미국 주식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예전엔 특정 계층만 하던 해외 주식 거래였지만, 최근엔 스마트폰으로도 손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된 것도 머니 엑소더스(자금 탈출)를 부추긴다.

 

 

아예 안전한 채권으로 당분간 대피해 있겠다는 안전지향족(族)도 적지 않다.

올 들어 국내외 채권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작년 한 해 유입액(약 4조원)을

크게 웃도는 11조원이 넘는다.

반면 증시의 장세 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면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큰손

들의 스마트머니(똑똑한 돈)는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코스피 지수가 2% 넘게

떨어질 때(총 6거래일)마다 개인 자금은 평균 6300억원씩 과감히 한국 주식에

베팅했다.

 

하지만 지난 8일 코스피가 2.2% 하락한 날의 개인 순매수 금액은 5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선 저가 매수용 자금이 들어오긴커녕, 오히

려 480억원이 빠져나갔다.

◇골드바 판매 배로 늘어

 

 

고금리 특판 금융 상품은 나오자마자 전부 완판된다. IBK저축은행이 지난

10일 내놓은 최대 연 5.5%인 특판 정기적금은 단 하루 만에 마감됐다. 지난

8일에는 SBI저축은행이 판매한 연 10%짜리 모바일 정기적금이 2시간 만에

동났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선착순 5000명 한정으로 판매했는데 고객 반응이

예상보다 좋아 조만간 2차 특판 적금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큰손들이 안방 금고에 쌓아놓는 골드바(금괴)도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하나·

농협은행의 올 상반기(1~6월) 골드바 판매액은 32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보다 92% 늘었다.

 

수요가 늘어 물량이 동나는 바람에 6월 한 달은 은행들이 골드바를 거의 팔지

못했는데도 그렇다. 우정사업본부도 지난 5월부터 전국 우체국에서 골드바를

판매 중인데, 하루 평균 2억원꼴로 팔려나간다.

정부 규제가 점점 강해지는 국내 부동산에 대한 대안으로, 유럽·미국·호주 등

해외 부동산 펀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올 들어 6월 말까지 설정된

해외 부동산 펀드 규모는 7조원에 달한다. 반기 기준 사상 최대 금액이다. 이런

추세면 올해 연간 해외 부동산 펀드 투자액은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증시에 돈 머물게 할 유인 필요"

흔히 주가는 거래 대금의 그림자로 불린다. 주가가 변하기 전에 거래 대금이

먼저 움직인다는 의미인데, 거래가 줄어들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라

서 그렇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증시의 돈 가뭄 현상이 예사롭지 않

다고 말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2080선인 코스피 지수는 지난 2007

년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져 장기 투자 원칙이 무색해졌다"며 "실망한 투자

자들은 국내 시장에서 짐 싸서 떠나거나 치고 빠지기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고 말했다.

신한BNPP자산운용의 서준식 부사장은 "그동안 기업 가치가 오른 것에 비해

주가가 안 오르니 국내 주식시장으론 돈이 가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이라며 "한국 증시에 돈이 머물게 할 만한 인센티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직후에 정부가 출시했던 장기 주식형 펀드(불입액의

최대 20% 소득공제)가 대표적이다. 투자 여력이 없는 20~30대 젊은 층을

위해 과감한 세제 혜택을 주는 상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부동산도 오래 보유하면 장기보유특별공제를 해주듯,

한국 주식도 3~5년씩 오래 들고 있는 건전한 투자자에겐 배당소득세를 깎

아주는 등 장기 투자 활성화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