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두 정상에게 바란다 [김형석 칼럼]
한일 두 정상에게 바란다 [김형석 칼럼]
국민 대다수는 양국 동반성장 원해… 인도주의 평등사회 누구도
거역 못 해 역사적 책임은 미래를 위한 건설… 미래 위한 열매
맺어야 과거 해결 후대 번영과 행복 해치는 일 멈춰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현 정부가 출범하고 2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국민과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모르겠다. 안보, 외교, 경제 등 성공적인 업적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협치와 국민의 대통합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저버린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정치계의 협치는 물론 사
회 지도층과의 협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가 남겨주는 결과를 기다려
달라는 자세였다. 적어도 국제 문제에 있어서는 전문가들의 협조를 구했어
야 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일 간의 경제 분쟁도 그렇다. 국민의 절대다수
는 과거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젊은 세대와 양국의 미래를 위해 동반성장
과 협력을 원하고 있다.
한미일의 협력은 동북아의 안보는 물론 자유시장경제와 세계경제 질서를
위해 비판의 여지가 없이 중요하다. 자유와 인간애의 가치는 자유민주국가
의 역사적 사명이다.
앞으로 한 세기쯤 경과하면 러시아와 중국도 같은 대열에 참여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건설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선의의 경쟁과
인도주의에 따르는 평등사회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정도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과 일본이 치르고 있는 불행한 사태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정치적 과오이며 실책이다. 그 책임의 주역은 다분히 일본
의 아베 총리와 우리 대통령이다.
양국의 지성인들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오늘의 사태가 잘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그 역사적 뿌리는 100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
은 미래를 위한 건설이지 과거 문제의 뿌리를 바로잡는 과제가 아니다.
세월이 지난 후일에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들은 두 정상의 판단과 정치적 행
보가 옳았다고는 보지 않을 것이다. 양국의 장래와 젊은 세대들의 희망과
행복을 볼모로 삼은 도박을 왜 감행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와 독일은 수백 년에 걸친 불화와 전쟁의 역사를 남겼다. 그러나 제2
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우리는 독일 지도자들의 반성과 과거에
대한 사과와 보상 정신이 프랑스보다 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국가에서는 회개하라는 정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원하는 것은 경제적 보상이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뉘우치고 서로 협력
해 새로운 세계사에 기여하자는 소원이었다.
그 역사적 새 출발의 기회를 역행한 것이 일본의 아베 정권이다. 100년 전의
과거가 중한 것이 아니다. 두 국민과 미래 세대를 위해 이제라도 방향을 바
꾸자는 요청이다.
우리 정부는 최선의 길을 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태의 계기를 만든
징용 보상 문제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기했는가. 청와대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책임자가 대법원 판결을 반대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공언하
는 것을 보고 국민들의 상식이 더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100년 전 친일, 반일을 끄집어내 범국민적인 항일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호
소였다면 그런 가치관을 갖고 어떻게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
여갈 수 있는가.
100년간의 원한은 다 해소되어야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사고는 역사적 교훈
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과거가 해결되는 법이다.
오늘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은 두 나라 정상 개인들의 역사관에도 영향이 있
는 것 같다. 한 야당 정치인의 질문에 우리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
다. 한미일이 밟고 있는 세계사적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공산국가로 남
아 있는 중국이나 그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러시아의 정치나 역사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거나 어느 편의 책임을 물을 때가 아니다. 두
정상과 정부가 세계 역사에 역행하며 후대들이 누릴 수 있는 번영과 행복을
저지하거나 해치는 일을 더 진행시키지 말아야 한다.
두 나라 국민들의 희망과 역사의 정상적인 진로를 가로막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