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화해가 간절한 이들
韓·日 화해가 간절한 이들
조선일보 안준용 정치부 기자
일본 후쿠이현(縣)의 소도시 다카하마에 사는 60~80대 주부 10여 명은 매년
11월 충남 보령을 찾는다. '한·일 우정 음악회'에서 그들의 악기로 '고향의 봄'
'아리랑' 등 한국 음악을 연주한다. 2011년 이 음악회를 만든 친구 고(故) 박
영선씨와의 우정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였던 박씨는 2007년 보령의 우호 도시 다카하마에서 무료 한국어
강좌를 열었다. 2010년엔 자비로 '한국문화교류센터'도 세웠다. 일본 이웃들은
이곳에서 박씨와 연주도, 김장도 함께하며 한국을 알아갔다.
박씨가 난소암으로 2015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친구의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어렵게 됐다. 일본 정부가 2차 경제 보복에 나선 지난 2일, 박씨
의 남편 구본태(59)씨는 "올해 음악회는 쉽지 않은 분위기라 아내에게 면목이
없다. 슬픈 일"이라고 했다.
한·일 정부의 충돌로 그간 양국 관계를 지탱해온 민간 교류가 줄줄이 끊어지고
있다. 1988년부터 이어진 어린이 교류가 중단됐고, 일본과 교류를 취소·재검토
하겠다는 국내 지자체만 수십 곳에 달한다.
우리 국민의 분노는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서 비롯된 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아베 내각은 보복 조치를 하면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아니라 안보 우려 때문'
이라는 상식 밖 이유를 댔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일본 정부가 아닌 일본 국민, '일본에 관한 모든 것'을 혐오
대상으로 삼으면 정부 간 화해 후에도 양국 관계를 되돌리기 어렵다. 이미 국내
에는 일본 수입차를 탄 고객을 거부하는 주유소·주차장·식당까지 생겼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보복 조치를 막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 한·일 갈등
으로 국민 피해와 상처는 커지는데, "힘을 모아달라"고만 했지 여태 사과 한마디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일 "국민이 단합해달라"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
는다"고만 했다.
양국 갈등을 두고 '총선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한 여당 내부 보고서엔 사태를 보는
그들의 시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은 외교적 책임과 의무마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
한국엔 약 2만5000명의 일본인, 일본엔 약 45만명의 한국인이 산다. 매년 국내
에서만 한국인·일본인 부부 1300여 쌍이 새로 탄생한다. 이들을 비롯해 양국의
의식 있는 국민은 두 정부가 한·일 관계를 방치하는 지금도 간절한 마음으로 훗
날의 화해를 준비하고 있다.
2001년 도쿄 전철역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 이수현씨의 추모식
에는 올해로 18년째 일본 시민들이 함께했다. 올 3월 세상을 떠난 이씨의 아버지
가 두 달 전 아들의 추모식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한·일 관계가 엄혹한
때일수록 활발하게 교류해 마음 잇는 일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4/20190804019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