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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商高

조 쿠먼 2019. 8. 11. 05:52

[만물상] 商高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

 

김대중·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 15·16대 대선은 '상고 출신이 경기고

출신을 이긴 선거'로 표현되기도 한다. 두 전 대통령은 각각 목포상고와

부산상고를 나왔다. 1970년대까지 명문 상고에 진학하려면 중학교 성적

이 상위 5% 이내에 들어야 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주로 인문계 고교 대신 진

학했다. 1977년 고입 연합고사를 치렀다는 선배는 "당시 인문계 커트라인

이 200점 만점에 117점이었는데 덕수상고·서울여상은 180점이 넘었다"

고 했다.

 

▶1980년대 들어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상고로 진학하는 인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 대입 정원 자율화 조치가 내려지자 공부 잘하는 학생

들은 대부분 인문계 고교로 진학했다.

 

상고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수과목이던 주산·부기를 없애고 비즈니스영어·국

제금융·정보처리시스템 같은 과목을 신설했다.

 

 

▶상고들이 앞다퉈 교명에서 '상업'이란 단어를 없앤 시기도 이때쯤이다. 대

동상고가 대동정보산업고를 거쳐 대동세무고로 바뀌었고 경복여상은 경복

비즈니스고가 됐다. 영등포여상은 서울영상고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교인 목포상고는 2001년 일반계 고교가 되면서 교명

을 전남제일고로 바꿨는데 동문들 항의가 끊이지 않자 2014년 다시 '목상고'

로 바꿨다. 부산상고는 일반계로 전환되면서 1895년 설립 당시 이름인 개성

고를 되가져왔다.

 

▶우리나라 명문 상고들 중엔 일제시대 때 개교한 학교가 많다. 3·1운동 후

식민지 전략을 문화 통치로 바꾼 일본이 1920년대 초 전국 주요 도시에 상

업학교를 세웠다. 한국인을 기능직과 사무직 인력으로 양성한다는 계획이

었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이들 학교에 진학했고 결국 광복 후 대한민국 경제 발

전의 인적 토대가 됐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은행 창구 직원 대부분이 여

상 출신이었고 일반 기업의 회계·경리 부서 인력도 상고 출신이 많았다.

 

▶1920년 설립된 덕수상고도 2007년 특성화계(실업계)와 일반계 과정이

모두 있는 학교가 되면서 이름을 덕수고로 바꿨다. 이 학교를 둘로 나눠

특성화계는 경기상고로 통합하고 일반계 덕수고는 서울 위례신도시로 이

전한다고 한다.

 

고졸 취업률 하락으로 특성화고 인기가 떨어지고 학생도 계속 줄어드는

탓이 크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부터 진옥동 현 신한은행장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덕출이(덕수상고 출신)'들의 모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

지는 셈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9/20190809029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