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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아무나 흔드는 나라’ 됐나

조 쿠먼 2019. 8. 22. 05:11

어쩌다 ‘아무나 흔드는 나라’ 됐나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北 ‘소대가리도 앙천대소’ 조롱
文대통령 아닌 대한민국 모욕
분노 넘어 허탈감까지 자아내

중국은 ‘총알받이’ 위협하고
미국도 수시로 동맹 무시 발언
평화 헛꿈 땐 동네북 신세 자초


문재인 대통령의 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북한이 즉각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16일 대변인

담화에서 경축사를 망발로 표현하며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북남대

화의 동력이 상실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자의 자행의 산물

이며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년간 남북대화와 미·북 대화에 모든 것을 걸고 김정은에게 러

브콜을 보내 온 문 대통령으로선 서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밝힌 ‘평화경제’ 구상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

소할 노릇”이라고 한 막말에는 국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연일 쏘아대는 미사일에 제대로 반박도 못 한 이 정부가 북한

에 어떻게 보였기에 이런 막말을 듣는가.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관통

하는 핵심 메시지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이다.

 

문 대통령은 납북시인 김기림의 시에 나오는 이 구절을 7차례나 사

용했다. 일본의 무역 규제로 인해 경제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경제 강국이 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자고 제

안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았지만, 여전히 일본이 우리를 흔들 수

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무역 규제가 그만큼 아프다는 사

실을 은연중에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가 분단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교량 국가’가 돼야 하고,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

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는 유

지되고 있으며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며 남북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북한은 조평통 담화와 함께 미사일 발사로 문 대통령의 기

대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조롱했다. 자유도 인권도 없는 세계

최악의 빈곤집단이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흔드는 이 상황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낀다.

 

아베 정부의 무도한 무역 규제 때문에 우리끼리 친일·반일 논란으

로 에너지를 소진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그간 극진히 환대한

북한마저 저러니 기가 막힐 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흔드는 것은 북한과 일본만이 아니다. 사드(TH-

AAD) 배치 때문에 중국이 우리 기업을 괴롭히고 한국 경제에 막대

한 손실을 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어선들이 대규모로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고, 중국 공군기가 걸핏하면 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으로 침범하는 등 중국도 마음대로 우리를 흔들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아시아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면 중국은 좌시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총알받이가 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막히게도 동맹국인 미국의 대통령까지 한·미

동맹을 무시하는 발언을 예사로 해 국민을 경악하게 한다. 미국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뉴욕주 햄프턴에서 열린 대선자

금 모금 행사에서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임대료 114달러 13

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으로부터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

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한국은 잘사는 나라인데 그들의 방

위를 위해 왜 우리가 돈을 내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임대료 발언

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동맹을 돈으로 계산하는 이런 발언이 내년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수사

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거듭되는 동맹 무시 발언은 결코 가볍

게 넘길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은 ‘아무나 흔드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이 싸움과 무관할 수 없지만, 특히 한반도는 그 소용돌

이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한국의 장기적인 대외 전략

은 무엇이며 문 정부가 추구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얼마나 타당

성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화와 평화라는 꿈에 젖어 자칫 냉혹한 국제정치의 가련한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