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정치광고 [횡설수설/이철희]
‘가짜뉴스’ 정치광고 [횡설수설/이철희]
거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4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꼬박 이틀이나 불려나왔다. 늘 입던 회색 티셔츠
대신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페이스북이 대선 때 러시아발(發) 가짜뉴스와 댓글부대의 놀이터가 되고,
페이스북 사용자 정보가 고스란히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진영에 넘어가 선
거운동에 이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저커버그는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
이 됐다. 의회도 그 문제를 집중 추궁하겠다고 잔뜩 벼르며 그를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시킨 것이다.
▷하지만 정작 쩔쩔맨 것은 의원들이었다. 한 칼럼니스트는 청문회장의
저커버그를 ‘조부모 댁을 방문해 열심히 와이파이 켜는 법을 가르쳐주는
예의바른 10대 소년’이었다고 묘사했다.
평소 시답잖은 질문이다 싶으면 차갑게 무시하며 적대감까지 드러내던 저
커버그였지만 컨설턴트와 변호사, 이미지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의 준비팀
과 몇 주에 걸친 철저한 예행연습 끝에 곰살궂은 젊은이로 변신한 것이다.
더욱이 워드프로세서도 제대로 못 다루는 의원들이 “내 아이들이 인스타
그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같은 한심한 얘기를 쏟아내는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면서 저커버그는 일단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긴급뉴스: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이 방금 트럼프의 재선을 지지했다.’
지난주부터 페이스북에는 이런 내용의 광고가 널리 퍼지고 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선거운동본부가 내보낸
광고다.
이 광고는 “아마 여러분은 충격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
다(미안)”라며 페이스북의 콘텐츠 감시대책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가짜뉴스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저커버그가 트럼프에게 페이스북에서 거짓말을 할 자유로운
권한을 줬다”고 강력 비판했다. 가짜뉴스를 앞세운 고의적 허위 광고로
저커버그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페이스북은 최근 정치인들의 포스트는 설령 회사의 콘텐츠 규정을 위
반했더라도 팩트체크를 하거나 삭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의 발언엔 간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런 측은 이런 방침이 결국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트럼프 대통
령을 위해 꽃길을 깔아준 것 아니냐고 힐난한다. 사실 이런 논쟁도 진짜
무서운 가짜뉴스,
즉 매우 교묘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날조뉴스에 어떻
게 대응할 것이냐는 문제로 들어가면 그저 장난 같은 고민일 수 있다. 정
당한 정치 발언과 고의적 속임수를 구별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총선을 6개월 앞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