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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데이’

조 쿠먼 2019. 10. 28. 04:28

‘사과 데이’

 

황성규 문화일보 논설위원

우리말에는 유난히 동음이의어가 많다. 동철이의어(同綴異義語)라고도 하는 동음어가 많은 것은 한자어가 대다수인 언어 환경과 관련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관련한 용어들만 해도 그렇다. 당장, 인명 조국(曺國)은 보통명사 조국(祖國)과 한글은 똑같다.

 

다만, 첫음절의 한자 ‘조’ 자가 다를 뿐이다. 4성조로 따지면 ‘曺’는 평성이나, ‘祖’는 상성이라는 발음상 차이도 있다. 조 서울대

교수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구속적부심 공간에도 ‘동

음이의어’가 있었다.

 

송경호(宋景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와 송경호(宋庚鎬) 서울

중앙지검 3차장이다. 두 동갑내기 판·검사는 성명 3자 중 이름 첫

자를 제외한 한자까지 똑같다.

조-정 부부 일가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 떠오르는 동음이의어는 하

나 더 있다. ‘사과’라는 말이다. 사과(沙果)와 사과(謝過)는 한글은

같지만, 한자는 두 글자 모두가 다르다.

 

여기서 먹는 사과가 떠오르는 것은 정 씨가 구속 수감된 10월 24일

이 ‘사과데이’였기 때문이다. 달콤한 사과를 주고받으며 서로 화해

하고 용서하자는 취지에서 민간이 정한 기념일이다.

 

요즘은 애플데이로 통한다. 먹는 사과는 보는 사람에 따라 이미지도

다르다. 컴퓨터·IT 관계자들은 아이폰의 애플사를 생각하고, 과학

자들은 아이작 뉴턴을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문학도와 연극인들은

빌헬름 텔을, 기독교인들은 선악과를 연상한다.

어제 사과데이에 꼭 필요한 사과는 먹는 사과가 아니었다. 마음속

에서 자란 사과였다. 구치소에서 이틀째를 맞고 있는 정 씨도 남편

조 씨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사과데이를 넘겼다.

 

또, 그를 장관에 임명했던 대통령은 물론, 하다못해 그들을 옹호·수호

하던 사람·단체들도 일언반구 사과가 없이 지나갔다. 제 잘못을 인정

하고 용서를 비는 게 사과(apology)다.

 

요구받기 전에 먼저 용서를 구할 때 공감이 커진다. 관련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비난받기 전에는 결코 변명이나 사과를 하지 말라.’

이 말을 편지로 토머스 웬트워스 총독에게 전한 주인공은 영국 스튜

어드 왕조의 찰스 1세. 그는 청교도혁명(1649년) 직후 처형당했다.

스페인·프랑스와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하고, 청교도들을 탄압했

으며,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를 무시하고 전제정치를 편 데 대한

처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