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북한에 라면 뺏겼지만 메달 53개 따왔다

조 쿠먼 2019. 10. 30. 06:59

북한에 라면 뺏겼지만 메달 53개 따왔다

 

 

[중앙일보] 입력 2019.10.30 00:05

 

 

방북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역도 선수단과 대한역도연맹 관계자. 박린 기자

 

“(북한) 입국 수속 때 고기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라면을 뺏겼다.”

평양역도대회 출전선수단 귀국
호텔서만 지내, 북 관중은 외면

평양에서 열린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여자

87㎏ 이상급 이선미(19·강원도청)가 29일 귀국길에 전한 얘기다. 한국 유소년·

주니어 역도선수 38명은 20~27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대회에서

금메달 14개·은메달 20개·동메달 19개를 수확해 돌아왔다. 대신 압수당해 평양

에 놓고 온 건 한국 라면이다.

앞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15일 북한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북한전을 위해 방북했다가 푸대접을 받았다. 그런 축구만큼은

아니었지만, 역도도 고생했다.

휴대폰 없이 방북한 선수들은 일주일을 거의 호텔 안에서만 지냈다. 유소년 여자

81㎏ 이상급 우승자 박혜정(16·선부중)은 “호텔이 답답했고 휴대폰도 못썼다.

그래서 호텔에서 선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 돈독해진 것 같다”며

 

“언니들과 호텔 복도에서 놀았다”고 소개했다. 이선미는 “어떤 날은 마트에 가도

뭐라 안했는데, 또 다른 날은 마트에 갔더니 북측 사람이 와서 ‘(마트에서) 나오라’

고 했다”고 전했다.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유소년 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 주니어 여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한 이선미. 인천=박린 기자

 

한국 선수단은 평양에서 5성급 호텔에 머물렀다. 이선미는 “음식은 잘 해주셨다.

닭고기가 들어간 흰색과 빨간색 국이었는데, 한국과 (맛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장 밖은 90년대 한국 같았다.

 

훈련 시설은 운동하기에 좋았다”며 “다만 운동 시간은 원래 2시간이고, 다른 나

라에서는 조금 더 해도 뭐라 안했는데, 평양에서는 시간이 되니 나가라고 했다”

고 말했다. 대회 기간 남북 선수간 대화는 전혀 없었다. 박혜정은 “경기장에서

서로 떨어져 앉아 있어 눈치만 보는 시간이 많았다”고 말했다.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22일 평양 청춘가역도경기장을 찾은 평양 시민들이 남측 선수의 순서가 되자 자리를 비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관중은 한국 선수 경기와 시상식 때 우르르 자리를 비웠다. 그랬다가 북한

선수 시상식 때 돌아와 국가를 제창했다. 박혜정은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말

했고, 이선미는 “북한 주민들이 많이 왔지만 남북은 서로 남남 같았다. 원래

기록을 내면 박수를 쳐주는데, 북한 선수들한테만 쳐줬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자기 체급에 걸린 금메달 3개를 싹쓸이 해 ‘포스트 장미란’이라

불리는 이선미는 “스포츠는 정치랑 관계 없이 함께 어울려서 하는 거니까, 앞

으로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한편, 북측이 내년 2월말 한국에서 열리는 제1회 동아시아 대회 참가와 관련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아시아역도연맹 측에 전했다고 29일 대한역

도연맹이 공개했다.

인천=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