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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정치 (김동길)

조 쿠먼 2019. 12. 1. 06:51

 

 

 

 

 

◆ 2019/11/30(토)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탄 것은 (579)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탄 것은

 

1955년 11월 30일 오후 2시 15분이었다. 그 당시 내가 갖고 다니던 작은

성경책 한 귀퉁이에 그렇게 적혀있으니 아마도 사실이겠지.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비행장은 미군들이 사용하던 여의도 공항밖에 없

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생기기 이전이라 서북항공(Northwest

Airlines) 하나뿐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모든 승객들의 전송은 당시에 반도호텔이라고 불리던 지금의

롯데호텔 앞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고 떠날 사람들만 정

해진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향하였다.

 

당시 나는 연희대학의 전임강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였다. 내 친구

이근섭도 나와 있었고, 나와 가깝던 시인 노천명도 작별의 인사를 나누러

그 자리에 왔었다. 내가 진명여고에서 가르치던 학생들 중에 이양자, 설영희,

김은숙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기억된다.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

 

그 당시에 노스웨스트는 미국으로 직행하는 비행기가 없어서 일본 도쿄에서

하루 묵으며 그곳에서 사람들을 더 태우고 그 다음날 시애틀로 가게 되어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의 도쿄는 우리의 서울보다 열 배는 더 개명한 나라같이

보였다.

 

일본의 천황이 거주하는 궁성의 '니주바시'가 가까운 곳에 있는 '치요다호텔'에

묵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다음날 하네다 비행장으로 가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였다.

 

12월에 접어들어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애틀의 야경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것을 일러주는 찬란하고 요란한 모습이었다. 64년 전 11월 30일이었다.

 

김동길

 

 

◆2019/11/29(금) 동짓 날의 꿈 (578)

 

동짓날의 꿈

 

날마다 조금씩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여 겨울이 매우 깊어가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달라지게 해가 짧아져서 추위를 이기기가

어려워지면 열심히 광화문에 몰려나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근심하는 그 많은

애국동포들의 심정을 우선 생각하게 된다.

 

함께 시위운동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이 겨레의 역사에 큰 변화가 생기기에

앞서 반드시 시위로서 많은 국민들이 뜨거운 의사 표시를 하여왔음을 보아

왔다. 그러나 2019년 가을, 특히 개천절과 한글날, 문재인 정권을 향한 국민

의 궐기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이 겨레의 정신적 자세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1960년의 4.19 혁명 때와는 달리, 이 민중이 보여준 벅찬 기상은 한

국의 언론이 마땅하게 취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영국의 BBC나 미국의

CNN 같은 국제적 매체에서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문정권의 언론 단속의 솜씨가 탁월하였기 때문인

가, 아니면 문대통령 일파에게는 어떤 비법이 있었기 때문인가 지금도 궁금하다.

 

그러나 그 두 차례에 걸친 엄청난 국민적 시위는 거짓말을 더하며 사태를 수습

하려던 법무부장관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고, 이와 동시에 이 나라의 대

통령을 무기력한 지도자로 만든 것뿐 아니라 반민주적 처사로 일관하는 이 나

라의 19대 대통령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만은 사실이다.

 

김동길

 

 

◆2019/11/27(수) 인물과 시대 (576)

 

인물과 시대

 

한 인물이 나타나 한 시대를 바로 잡는다는 말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난세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도 또한 부인 할 수 없다. 이래저래 시대와 인물은 밀접한 관

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 역사에 있어서 남북 전쟁은 독립 전쟁 못지않게 중

대한 큰 사건이었고, 바로 그 시대에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한 지도자가 등장했

으니, 시대가 인물을 만들고 역사를 발전시킨다는 주장은 타당한 주장이다.

 

역사를 보는 눈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역사는 위인의 전기”라는 단정은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링컨이 없는 남과북의 대 충돌은 오늘의 미국을

무슨 꼴로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한 시대의 길잡이로서의 지도자의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링컨은 언제나 타협할 수 있는데 까지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하였지만 원칙 하나

만은 시종여일 굳건하게 지켜나갔다. 그의 대 원칙은 무엇이었는가? 그에게는

미합중국을 살리는 것이 대통령에 취임한 최대의 과제였다.

 

그 큰 명제에 비하면 흑인 노예들의 문제는 링컨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문제

였다.

 

1948년에 출범한 대한민국은 예기치 않았던 풍랑을 격고 난파 직전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황교안이라는 이 시대의 정치 지도자는 초겨울의 추위

속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단식에 들어갔다. 그 단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국민 전체의 마음이 공포에 사로잡힌 듯하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가 단식으

로 목숨을 잃으면 대한민국은 북조선 인민공화국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난세에 인물이 등장하였다. 나는 그렇게 믿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김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