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 [횡설수설/김광현]
‘배달의 민족’ [횡설수설/김광현]
유학이나 장기 출장 등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이면 깜짝 놀라는 게 몇 가지 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총 칼 맞을 걱정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심의 안전,
그리고 전화나 인터넷 설치를 신청하면 당일 아니면 늦어도 다음 날이면 깔끔하
게 끝내주는 초고속 서비스에 혀를 내두른다.
그중의 백미가 음식 배달 문화다. 24시간 족발 치킨 짜장면 햄버거 피자는 기본
이고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1시간 내 배달이 안 되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배달 서비스 앱 1위인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독일계 음
식배달 서비스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된다. DH는 이미 2위 ‘요기요’
와 3위 ‘배달통’을 인수한 터라 한국 음식배달업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음식 가방을 매단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녀서 후줄근해 보일지 모르지만 4차 산
업혁명의 기술이 배달 앱에 총집약돼 있다. 음식점 검색 및 추천에서 음성 주문,
결제까지 인공지능(AI)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자율주행 배달 로봇을 개발해
시험 중이다.
로봇이 사람도 아니고 차도 아니어서 인도로 달려야 할지, 차도로 달려야 할지 제
도가 미처 못 따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배달의민족’ 지분 87%의 인수 금액은 4조8000억 원으로 국내 인터넷기업의
인수합병(M&A) 금액으로 사상 최대다. 최근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
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가격으로 제시한 금액 약 2조 원의 2배를 훌쩍 넘는
금액이다.
▷‘배달의민족’은 익살스러운 이름이다. 배달은 고조선의 다른 이름인 배달(倍
達)과 물건을 나르는 배달(配達)의 중의적 표현이다. 오토바이 택배에서부터
새벽 음식 배송까지 배달 문화가 워낙 발달해 있으니 ‘配達의 민족’이란 뜻으
로 들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서 배달주문 앱 이용자가 2500만 명, 2010년 시작한
‘배달의민족’의 누적 주문량은 작년 말 4000만 건을 넘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작사한 한글날 노래 1절 첫머리는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로
시작한다.
신용하 전 서울대 명예교수 등에 따르면 고조선의 첫 도읍지 ‘아사달’은 ‘밝달
아사달’이라고도 했다. ‘밝달’이 고조선 민족의 상징적 호칭으로 확대되면서
고조선 사람들을 ‘밝달’ 사람이라고 불렀다.
‘밝달’을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이 ‘倍達(배달)’이다. 무일푼으로 음식점 전단
정보를 모아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도 안 돼 수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었으니
이 회사 대표 김봉진 씨와 직원들 역시 진취적인 배달의 자손이라 할 만하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