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인어' 차관
[만물상] '인어' 차관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
박근혜 정권 출범 직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사격 국가대표 출신 박종길씨가
임명됐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 최초의 차관이었다. 해병대 복무 시절 25m 밖의
종이컵만 한 표적 4개를 4초 만에 명중시켰다는 그는 1970~80년대 아시아 최
고의 권총 사수로 군림했다.
그를 국가대표로 뽑은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종규 경호실장이었고, 박근혜
대통령과는 그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박 차관은 그러나 임명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존재감이 워낙 약해 문체부 직원들이 이름조차 기억 못 하고 '사격했던 분'이라고
말할 정도다.
▶문체부 1차관은 문화 담당, 2차관은 체육·관광·국민소통실 담당이다. 1차관은
문체부 관료가 임명되고 2차관은 외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옛 국정 홍보처가
축소된 조직이 국민소통실이어서,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2차관으로 임명돼
언론 대응 전략을 기획하거나 실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다섯 개를 따 '아시아의 인어'라는 별명을
얻었던 최윤희씨가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됐다. 박종길 차관 이상의 깜짝 발탁이
다. 최 차관은 선수에서 은퇴하고 결혼한 뒤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줄
곧 그곳서 살았다.
2009년 한 인터뷰에서 "어려서부터 내 꿈은 현모양처였고 결혼 후 실제로 현모
양처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8년 만인 2017년 귀국한 뒤 갑자기 '문
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체육인 선언대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더니 작년 문체부 산하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번에는 문
체부 차관이 됐다.
▶능력을 갖춘 체육인이 체육 담당 고위 관료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행정 능력만 발휘한다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 "결혼 후 줄곧
전업주부로 살았다"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뒤 그
정권하에서 공기업 대표이사를 거쳐 차관에 오르며 '벼락출세'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이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독일계 귀화 방송인인 이참씨, 상임감사에 코미디
언 자니 윤씨가 임명됐을 때도 그랬지만 문체부 고위 임명직 인사엔 유독 '깜짝
쇼'가 많다. 그때마다 문체부 직원들은 자조한다.
최 차관 임명 소식에 인터넷에선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딴 박태환은 장관이냐'는
등 논란이다. 그래도 문체부는 친정권 언론사 출신 인사가 와서 '국민 소통'을 강
화한다며 성가신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인어 차관'이 낫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0/20191220033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