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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랭이 떡국

조 쿠먼 2020. 1. 4. 06:18

조랭이 떡국

 

 

 

황성규 문화일보 논설위원

흔히 쓰이지는 않으나 ‘떡국이 농간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재질은 부족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일을 잘 감당하고 처리해 나간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떡국은 설날 아침에 먹는 절식(節食)이라, 먹을 때마다 나이가 한 살씩 많아진다고 해서 첨세병이라고 했다.

 

또, 흰 국이라 백탕, 떡을 넣어 끓인 국이라 병탕 또는 병갱이라고도 했다.

그 기원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년 차례를 모신 뒤에 음복(飮福)

하는 술과 음식 중 하나가 떡국이었다.

 

육당 최남선의 주장에 따르면, 새해 첫날에 한 해를 시작하고 준비하는 정

결한 마음가짐을 위해 흰 떡국을 먹었다고 한다. 설날 떡국 문화에 담긴

의미를 잘 말해준다.

떡국의 주재료인 떡가래는 문어발같이 둥글고 길게 만들었다. 엽전 꾸러미

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그 가래떡을 요즘은 타원형으로 어슷썰기를 하지

만, 예전에는 10원짜리 동전 모양으로 동글납작하게 썰었다.

 

이를 국으로 끓여 먹으면서 새해 재물 복이 들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떡국

은 돼지고기나 쇠고기, 꿩고기 등을 넣고 끓인 다음, 노란 지단을 웃고명

으로 얹어 영양과 식욕을 돋운다.

 

육수를 내는 꿩고기가 없는 때에는 닭고기로 대신했다. 여기에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떡국에서 조상의 인문학적 소양을 읽을 수 있다.

특이하게도 고려의 수도 개성(송도) 지방의 떡국떡은 다른 지방과 달리

누에고치 모양이다. 검증되진 않았지만, 그 유래설은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한 해의 복을 조리로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조랭이(‘조리’의 개성

방언)라고 한다는 작명설이 있다.

 

또, 조롱박을 두들길 때 나는 소리로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해서 조롱박

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재물이 넘쳐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돈 벌어주는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끝으로, 등극 후 고려의 공양왕을 교살형에 처한 조선 태조 이성계의 목을

조르는 심정으로 떡국떡을 빚었다는 한풀이설(說)도 있다. 지난 1일 문재

인 대통령이 7인의 의인과 아차산에서 해맞이를 한 뒤 청와대에서 함께

떡국을 먹었다고 한다.

 

이 떡국 나눔을 감성 행사라 한다면, 이튿날 내놓은 ‘새로운 대한민국 100

년 시작’은 이념 선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초 대통령의 감성과 이념

을 잇달아 접한 국민은 ‘떡국의 농간’ 그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