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콧수염의 외교학

조 쿠먼 2020. 1. 22. 06:40

콧수염의 외교학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남성의 상징인 콧수염(mustache)은 인종, 종교, 문화적 차이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엇갈린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을 보면 얼굴 수염이 풍성했지만, 로마 시대에는 말끔한 모습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체모를 모두 밀어버리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지역적으로도 남성의 수염이 풍성한 중동·아랍권에서는 수염을 기르고, 수염이 없는 사람은 게이 취급을 받는다. 동양권에서도

군주와 귀족들이 장식으로 수염을 길렀고,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부

모가 준 신체를 훼손하지 않은 조선 시대에는 어린이와 내시를 제

외한 대다수의 남성이 수염을 길렀다.

 

정교회, 시크교도 등은 반드시 수염을 길렀지만, 로마 가톨릭교 신부

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군대에서는 위생

상의 문제와 화학전에 대비해 수염을 기르지 못하게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제16대 대통령은 50세까지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지만, 인상이 험해 보이니 수염을 기르는 것이 좋겠다는 한 소

녀의 편지를 받고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대선 단골 출마자였던 진복기 씨의 ‘카이저수염’이 유명

했고, 지난 연말 단식 농성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수염을 기

른 것도 화제가 됐다.

 

아돌프 히틀러의 ‘칫솔 수염’과 닮은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은 수염 때문에 기용되지 못할 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의 수염을 싫어해 “볼턴은 그 콧수염이 문제야”라며 발탁을 꺼렸다

고 한다.

최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의 콧수염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의 송

영길 의원이 “조선 총독 같다”고 공격하는가 하면, 한 종북 단체는 해

리스 대사의 콧수염 뽑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미 태평양 사령관 출신인 해리스 대사는 군 복무 시절엔 콧수염을 기

르지 않았지만, 전역 후부터 “외교관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자

콧수염을 길렀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 개별 관광 등에 대해 해리스 대사가 “미

국과 상의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 등이 못마땅해 당·정·청이 나서 해

리스 대사를 비난하며 콧수염을 걸고넘어지고 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혈통 문제까지 거론하자

CNN은 “한국인의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맹

국 대사의 개인 취향을 혈통까지 거론하며 비난하는 여당 의원들은

왜 중국의 무례에는 아무 말도 못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