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때보다 투명해지긴 했나
메르스 때보다 투명해지긴 했나
[중앙일보] 입력 2020.03.06 00:39
최상연 논설위원
인천국제공항을 뜬 항공기가 가다 말고 돌아오고, 중국의 우리 교민
집 대문엔 대못이 박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국인이란 이유
로 세계 각지에서 수모와 망신을 당한다. 지금 나라 꼴이 그렇다.
이 지경이 된 건 위험을 감수하고 중국인을 받아 준 결과다. 공항만
틀어막으면 될 일이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갔다. 국민 안전과
권익을 내걸고 집권했다. ‘제2의 메르스 예방’은 100대 국정과제였
다. 왜 그랬을까.
바이러스 감염은 병리 현상인데
과학을 과학 아닌 정치로 풀었다
중국을 막지 않았던 이유는 뭔가
문 정권의 친중반미, 친북반일 성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과 새로운 남북 이벤트 같은 것들 때문에 최소화로 갔다
는 것이다. 안 그래도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한 개별관광을 돌파구 삼
아 남북관계 재개로 달릴 거란 소문이 꽤 돌았다.
시 주석이 평양에서 열차로 서울에 오고, 판문점까진 김정은이 동행
할 거란 말까지 있었다. 어쨌든 ‘여행 제한이 불필요하다’는 주한 중
국대사의 겁박은 그맘때쯤 나왔다.
얼마나 신빙성 있는 얘기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북한에 발을 들여놓
는 순간 미국 입국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세상이다. 개별관광 신호탄
을 쏘아올린들 크게 먹히긴 어려운 구조다.
요란한 시진핑 방한 이벤트가 가능한 건지도 글쎄다. 그래서 더 궁금
해진다. 전문가의 방역 강화 의견이 쏟아질 때 청와대는 왜 문을 열었
는지. 듣고 싶은 전문가의 말만 골라서 앞세웠던 것인지.
또 있다. 북한 김여정이 청와대를 향해 ‘겁먹은 개’라고 퍼부었다. 대
통령이 남북관계 복원을 외친 다음 날 ‘섬멸의 방사탄’을 날리더니 말
폭탄으로 이어갔다. 묵묵부답 청와대는 그 흔한 경고 성명조차 없다.
그 정도도 아니다. 그날 통일부는 업무보고에서 북한 개별관광과 남북
철도 연결 추진을 밝혔다. ‘삶은 소대가리’ 욕설을 듣던 때도 그랬다.
그래서 청와대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건지 정말로 알고 싶다.
문 대통령이 ‘수퍼 전파자는 다름아닌 정부 자신이었다’고 전 정부를
두들겨팰 때 메르스 확진자는 100명이 안 되는 두 자릿수 상황이었다.
그래도 특별성명으로 ‘국민이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부는
뒷북 대응과 비밀주의로 국민 혼란만 가중시켰고, 컨트롤타워는 작
동되지 않았다’고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고, 수사한다면 대상이 바로
정부라고 압박했다.
지금 문 대통령은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점은 좋아졌다’
고 메르스 방역 실패를 거론하며 자찬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얼마 전 여야 대표 회담에서 대통령은 중국을 거친 외
국인 차단에 대해 ‘초기라면 몰라도…’라고 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
다. 이젠 중국인 입국 금지는 필요 없게 됐다.
한국에 있던 중국인마저 돌아가는 엑소더스가 현실화됐다. 하지만
‘실효성 있던 초기에 왜 차단하지 않았느냐’는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게 첫째 의구심이다. 설명은커녕 중국 다음가는 최악의
방역 실패에 사과조차 없는 무오류 정부다.
‘이니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다’고 말했던 상인은 ‘문빠’들의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 대통령 비난 전단을 돌리던 50대 가
정주부는 수갑 찬 채 끌려갔다. 불경죄였을 것이다.
불경하기론 듣기에도 민망한 욕설을 퍼붓는 북한이 그렇고, 으르고
협박하다 ‘한국이 걱정’이라고 면박을 주는 중국이 그렇다. 그런데
도 설설 기며 한없이 작아지는 정부다. 지지층 자존심과 국민 자존
심이 따로따로다.
바이러스 감염은 병리 현상이다. 하지만 감염이 확산되고 공포가
커지는 건 인재다. 어영부영 ‘코로나 코리아’를 만들어 놓곤 무조
건 좋아졌다는데, 메르스 사태와 비교하면 어떤지는 국민들이 더
잘 안다.
다만 궁금한 건 과학을 과학으로 풀지 않고 정치로 푼 이유다. 왜
그랬던 것인가. 국민의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정부가 투명
한 정부다. 그렇지 못하니 정부가 위기 몸통이란 소릴 듣는다.
그러면서 코로나와 어떻게 싸우나.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