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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매출이 코로나 전 하루 매출” 벼랑 내몰린 中한인들

조 쿠먼 2020. 3. 12. 06:14

“한 달 매출이 코로나 전 하루 매출” 벼랑 내몰린 中한인들

 

원난성 쿤밍시 쑹민현에서 문신효 씨가 운영하는 화훼업체의 직원들이 1, 2월에 팔지 못한 꽃들을 온실 바깥에 내놓고 있다. 문 씨는 "제때 팔지 못한 꽃은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며 "버리는 꽃이 400여만 위안어치"라고 말했다. 문신효 씨 제공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한 달 매출을 계산해 보니 중국 전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전의 평소 하루 매출 정도밖에 되지 않더

군요.”

온대성 재중한국외식협회 회장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베이징(北京)

왕징(望京) 지역에서 규모 750m²(약 226평)의 대형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인 7일 만난 그는 “매출이 30분의 1로 줄었다”며 한숨부

터 쉬었다.

 

직원 55명의 월급은커녕 한 달 임차료 20만 위안(약 3420만 원)의 4분

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월 매출이 떨어졌다. 이날 점심시간

대인 오전 11시 반경부터 3시간가량 식당에 머물렀지만 손님은 3팀(6

명)에 불과했다.

 

식당은 한산하다 못해 고요했다. 온 회장에 따르면 평소 이 시간대에는

300명이 몰린다. 이 건물의 다른 중국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아 을씨년

스러웠다.

 

정문 앞에 체온을 재는 보안요원만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온 회장

은 “손님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문을 열 생각으로 출혈을 감수했지만 이

대로 몇 개월 더 가면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난 1992년 중국에 정착한 중국 교민 1세대입니다. 지금은 내가 노력한

다고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네요. 중국 생활 28년 만에 가장

어려워요.”

그는 “중국의 이동 통제 조치로 직원이 복귀하지 못해 베이징 내 한국인

이 경영하는 식당 85곳 가운데 약 20곳만 문을 연 것으로 파악된다”며

“2,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을 것이다. 10% 정도는 폐업

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암담”


중국 베이징 왕징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온대성 재중한국외식협회 회장이 7일 텅 빈 식당을 바라보고 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전역을 휩쓴 코로나19발 경제 한파가 현지에서 식당 등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어려움을 견

디지 못해 떠나는 한인들이 늘면 자칫 중국 내 한국 교민 사회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우 중국한국인회총연합회 회장은 “베이징 상하이(上海) 광저우(廣

州) 칭다오(靑島) 톈진(天津) 등 주요 도시 지역 한인회장들을 통해 알

아보니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의 60% 이상, 서비스업의 50% 이상, 제조

업의 30% 이상 한인들이 더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산된

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한중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연이어 닥치면서 중국 내 한인 경제

가 그로기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주문배달 서비스 앱 ‘메이퇀(美團)’은 10일 자사 배달 주문 통계

를 근거로 중국 내 요식업체들의 운영 재개 비율이 55%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베이징 시내에 문을 연 식당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왕징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광상 씨는 2017년 사드 갈등으로 입은 피

해를 지난해부터 회복했다가 코로나19로 다시 큰 타격을 입었다. 하루

매출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사드 때 피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큰 것도 아니

었네요. 지금은 어떻게 비용 절감을 해도 회복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더

암담한 건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 “사드 때보다 훨씬 어렵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6일 후베이(湖北)성 이외 지역의 대기업 운영 재

개율은 90%, 저장(浙江)성 광둥(廣東)성 산둥(山東)성 장쑤(江蘇)성은

95%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업정보화부가 밝힌 중소기업 가동률은 52%에 불과하다. 베이

징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허베이(河北)성 싼허(三河)시 옌자오(燕郊)진

에서 자동차·가전 생산공정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 중인 김영재 씨는 “실

제 중국 내 공장 가동률은 그보다 많이 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의 공장은 가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공장이 있는 지역으로 연

결되는 도로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봉쇄돼 2개월 가까이 공장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15명 직원들도 공장에 복귀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그는 800만 위안(약 13억7100만 원)어치의 주문이 취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주문이 공중에 날아가면 정말 어려워집니다.

사드 때부터 3년 동안 계속 적자였는데 이젠 매출조차 없이 2개월이

지나가고 있어요. 주문까지 못 받으면 접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베이징한국중소기업협회 부회장인 그는 “이미 한계선을 넘어섰다. 이

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가장 힘들다”며 “국제통화

기금(IMF) 구제금융, 사스, 글로벌 금융위기, 사드 때보다 이번이 훨씬

어렵다. 정말 많은 한인 중소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지

적했다.

광저우에서 의류·봉제기업을 운영하는 한인들도 최악의 상황에 직면

했다. 광저우 한인 기업들에 회계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를 운영 중

인 이민재 씨는 “광저우의 한인 2만5000명 가운데 1만여 명이 봉제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의 1, 2월 공장 가동률은 0%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번 봄

상품 판매가 끊겨 다음 겨울 상품을 준비할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300곳의 컨설팅을 맡아 온 이 씨는 고객사가 매출을 올리지 못

하면서 덩달아 2개월째 매출이 없는 상태다. 그는 “이달 말까지는 어

떻게든 버티겠지만 그 뒤로는 장담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토로했다.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의 한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쿤밍(昆明)시 쑹

밍(嵩明)현에서 화훼업체를 운영하는 문신효 씨는 얼마 전부터 400여

만 위안(약 6억8000만 원)어치 꽃들을 버리고 있다.

 

1년 매출인 약 800만 위안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 춘제(春節·중국의

설) 기간인 1월 광저우, 저장 등 대도시에 판매하려 했으나 중국의 이

동 통제 조치로 교통이 마비되면서 시기를 놓쳤다.

“제때 팔지 못한 꽃은 품질 문제 때문에 버릴 수밖에 없어요. 지난달

말 이동 통제가 좀 풀린 뒤 직원들이 복귀해 꽃을 버리고 있습니다.

이달 한 달 동안은 계속 버려야 할 것 같아요. 자식을 버리는 심정이

라 마음이 얼어붙었네요.”

이덕호 칭다오 한인회장은 “칭다오 지역에서 소규모 업체를 운영하

는 한인들도 공장 가동률이 낮은데도 임차료는 100% 다 내야 하고

직원들 월급까지 줘야 해 문을 닫고 중국을 떠나는 이들이 꽤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급감해 진정세에 접어들었으나 현재 많은

지역에서 이동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 경제적 피해가 여전하다. 산업

생산 등 경제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도 10일 “중국 내 중소기업이 재

가동을 해도 사람과 물자 유동이 막혀 있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

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런민일보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시와 농촌 경계나 소규모 지방 도

시에 있고 이곳들의 방역 통제가 매우 엄격해 직원들이 복귀할 수 없

다”며 “직원들이 복귀해도 생산을 위한 물자 운송이 어려워 진정한

생산 재개를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중국 현지 한인 업체들이 이 어려

움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이다.

○ “한국 정부 지원 절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확연히 줄어든 반면 한국의 상황은 심각

해지면서 중국인이 한국인에 지나친 공포심을 갖는 것도 한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인 A 씨가 운영하는 베이징의 한 식당은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중국인 손님이 50% 이상을 차지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한국 상황이 악화되기 전인 지난달 중순까지는 중국인 단

골손님들이 시내에서 차를 몰고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의 발길마저 뚝 끊겼어요.” 그는 “사드 사태 때도

찾아왔던 손님들인데 지금은 중국인들이 후베이성 우한(武漢) 시민

들을 대했던 태도로 한국인들을 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 한인들은 “중국 내에서 한국인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한국 정부가 찾아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 대출, 법률문제 등 경영 회복과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원우 회장은 최근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에게 중국 현지 한인 자영

업자와 중소기업 경영인들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고, 장 대사는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정부에서 코로나19 관련 종합 지원 대책을 내

놓을 때 중국 내 한인 관련 내용도 다루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민도 한국 경제의 일부입니다.”(문신효 씨) “해외 교민들도 국익

에 기여하는 구성원이라는 점을 정부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김영

재 씨)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