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해찬 '탈당의 辨'
다시 읽는 이해찬 '탈당의 辨'
조선일보 김은중 정치부 기자
입력 2020.03.18 05:36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우리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영구 제명하겠다"고 밝혔다. 민병
두·오제세 의원에 이어 문희상 국회의장의 장남 문석균씨 등 공천
배제 인사들의 무소속 출마 선언이 잇따르자 공개 경고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엄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다. 4년 전 탈
당해 무소속으로 당선, 금의환향해 당대표 자리까지 오른 이 대표
자신이 '살아 있는 롤 모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치권에선 "4년 전을 벌써 잊었느냐"며 당시 이 대표가 밝힌
탈당의 변(辨)이 오르내리고 있다. 200자 원고지 6장 분량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이 대표는 민주당 '하위 50% 중진 의원(3선
이상)'에 들어 컷오프됐다. 그는 격분했다. 그해 3월 15일 "도덕성이
든, 경쟁력이든, 의정 활동 평가든 내가 컷오프당할 합당한 명분이
없다"며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내세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선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데 공당(公黨)의 결정은
명분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당과 민주주의를 위해, 앞으로 정치에 몸담을 후배들을 생각해도
이런 잘못된 결정은 용납할 수가 없다"고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당
안팎 후배들은 "이해찬이 제2의 이해찬을 막았다"고 농담하고 있다.
이 대표는 총선 1년여 전부터 이른바 '시스템 공천'을 선언했다. 컷오
프 탈락의 경험이 있는 그가 밀실 공천, 측근 밀어주기 관행을 없애고
계파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대표는 "시스템 공천과 공정한 경선을 통해 전체 현역 의원 20%
정도가 교체될 것"이라 했지만, 공천이 마무리된 지금 '586 운동권·
친문(親文) 일색'이라는 평가가 많다.
물갈이의 칼이 주로 비문 의원들을 향한 반면, 친문 의원은 컷오프 후
구제되는 사례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경선 방식 변경, 실세 공천위원
이 최대 주주인 정치 컨설팅 업체의 여론조사 등 공정성 시비도 끊이
지 않았다.
탈락 후보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 대표가 4년 전 강조했던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절차'에 대한 요구는 묵살됐다.
이 대표의 4년 전 탈당문에서 새겨봐야 할 대목이 또 있다. 당시 그는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라며 '명분'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은 선거법 개정 취지를 180도 뒤집는 아무 명분 없는 '비례민주당' 창
당을 추진 중이다.
불출마 의원들과 릴레이 오찬을 하며 이른바 '의원 꿔주기'에도 적극적
이다. "이 대표가 4년 전처럼 선도 탈당해서 비례당에 가시는 건 어떠냐"
라는 또 다른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8/20200318000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