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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43년 전 메구미 납북 기억하는 日本

조 쿠먼 2020. 6. 8. 07:04

[만물상] 43년 전 메구미 납북 기억하는 日本

 

조선일보 정권현 논설위원 입력 2020.06.08 03:18

 

열세 살 소녀 요코타 메구미는 1977년 일본 니가타시에서 하굣길에

북한 공작원에게 납북됐다. 납치당한 일본인 17명 중 가장 어리다.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씨가 엊그제 여든일곱 살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일본 사회가 슬픔에 빠졌다.

 

TV 방송은 추모 특집을 내보내고, 신문은 사설을 써서 애도했다. 아베

총리는 "전력을 다해왔지만 (메구미의 귀환을) 실현하지 못하는 애끊는

심정"이라며 "죄송함이 가득하다"고 했다.

▶메구미 실종 당시는 북한 소행인지 몰랐다. 1997년 일본에 망명한

북 공작원이 폭로해서 납치 사실이 알려졌다. 메구미는 해안가로 끌려

가 40시간 넘게 배 안에 감금됐고,

 

울부짖으며 선실 벽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바람에 북한에 도착할 즈음

손이 뻘겋게 피로 물들었다고 했다. 딸의 피랍은 평범한 샐러리맨 가정

을 너무도 가혹하게 무너뜨렸다.

 

시게루씨는 이사를 다니면서도 펜으로 메구미의 '메'라는 글씨가 적혀진

종이 상자는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거기엔 딸의 잠옷과 교과서, 좋아하

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등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한다.

 

▶시게루씨는 납치 피해자 가족회 대표를 맡았다. 아내와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딸의 구출을 호소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강연도 1400회 넘게 열었다. 북한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하자 처음으로 납치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메구미는 딸을 낳고 살다가 1994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고 했다. 10년 뒤 메구미의 유골이라는 것을 일본에 넘겼지만 감정

결과 다른 사람 것으로 확인돼 메구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게루씨는 2014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메구미가 낳은 딸이자

외손녀인 김은경과 상봉했다.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밝고 말을 잘

했다. 은경이가 메구미보다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 뒤 시게루씨는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 여러 해를 보

냈다. 병실 벽은 메구미 사진으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메구미가 납치

되기 전날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사준 머리빗도 43년간 몸에 지니

고 다녔지만 결국 딸을 못 보고 세상을 떴다.

▶6·25전쟁 이후 납북된 한국인은 500명이 넘는다. 메구미가 북한에

서 결혼한 남편도 서해안에서 납북당한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도 없다.

 

세계 최악 독재자가 험한 말을 쏟아내도 심기만 살피고, 탈북 의사를 밝

힌 청년을 인신 공양하듯 강제 북송하는 상황이다. 현충일 추념식에 천

안함 유족도 초대받지 못하는데, 납북자 송환은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7/20200607022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