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쿠먼
2020. 7. 20. 07:03
나는 평양 냉면을 모른다
조선일보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6·25 이전부터 평양냉면은 한반도 전역에서 팔리고 있었다
전라도로 출장 간 사람이, 그곳에서 괜찮은 평양냉면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육이오 전쟁 때 한반도 북부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서
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평양냉면을 퍼뜨렸기 때문에 전라도에
잘 없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최근 들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려 한다.
나의 아버지 쪽 집안은 평안북도 구성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일본이 항복하고 한반도 북부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버지
쪽 친척들은 스파이를 고용해서 몇 사람씩 38선 남쪽으로 넘어왔다.
첩자를 고용해서 친척들을 한국으로 빼 오는 작업을 주도한 나의 할아
버지는, 정부 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전국 곳곳으로 전근 다녔다. 그렇게
부산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평양냉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밤중에
지프차를 몰고 전라도 광주까지 가서 먹고 왔다.
평안도 출신인 할아버지가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평양냉면 식당이 전라도 광주에 있었던 것이다. 광주뿐이 아니다. 충청
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군산, 그리고 황해도와 인접한 인천에도 훌
륭한 평양냉면 식당이 많다.
광주, 군산, 인천 같은 한국의 서쪽 지역에 훌륭한 평양냉면 식당이 있는
이유는, 육이오 전쟁 때 LST선(전차 상륙함)이 북한 서해안 지역의 피란
민들을 실어다가 이곳에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함흥냉면이 흥남에서 부산으로 LST선을 타고 한반도 동해안 라인을 따라
부산까지 내려왔다면, 평양냉면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LST선을 타고 한
반도 서해안 라인을 따라 인천, 군산, 목포, 그리고 광주 등지에 전해졌다.
요즘에는 평양냉면 하면 서울, 함흥냉면 하면 부산이라는 식의 공식이 있
는 듯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평양냉면은 육이오 전쟁 때 피란민이 처음으로 한국에 소
개한 음식일까? 1931년 5월 17일 자 조선일보에는 전라도 광주 시내에
불이 나서 조일냉면옥이 피해를 보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던 평안도의 평양냉면과는 별도로, 식민지 시대에
이미 평양냉면은 한반도 전역에서 팔리고 있었다. 또 예전 냉면이 겨울
음식이었다면 요즘 냉면은 여름 음식이 되었다.
예전에는 여름만 되면 냉면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고기 국물을 우려내는 고기와 냉면 육
수가 빨리 상하고, 겨울에 강의 얼음을 떠다가 여름에 쓰다 보니 수인성
질병에 걸리기 쉬웠던 것이다.
이렇게 겨울 음식이던 냉면을 여름 음식으로 바꾸어준 것은 조미료 회사
인 아지노모토가 개발한 MSG, 그리고 냉장고의 보급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평양냉면은 수백 년에 걸쳐서 쉼 없이 그 형태를 바꾸었고,
그 변화 과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래서 평양
냉면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평양냉면을 모른다고.
다만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다. 누군가 평양냉면에 대해 잘 안다고 주장
한다면, 그 사람은 평양냉면이 겪은 수백 년 역사를 잘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임을 말이다.
그런 식의 맨스플레인(mansplain·남자가 자꾸 가르치려 드는 것) 아닌 면
스플레인(麵splain) 을 들을 때마다, 냉면은 젓가락으로 가락을 들어서 식
초를 뿌려 먹어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를 듣는 듯해서 체할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한국의 시민 개개인은 자신만의 평양냉면 먹는 방법을 개발
함으로써 평양냉면의 발전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면스플레인 여러
분, 같이 간 분들이 가위로 면을 자르든, 식초를 뿌리든, 계란을 나중에 먹든
부디 상관하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