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달걀과 신발

조 쿠먼 2020. 7. 22. 06:39

달걀과 신발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지난 1986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외교적으로 불편했던 남태평양의 통가를 방문했다. 행사를 끝내고 차에 타려는 순간 달걀 세례를 받아 옷이 엉망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음날 통가 의회 연설에서 “나는 달걀을 좋아해요.

 

다음부터는 아침 식사 시간에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유머러스하게 넘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이던 2002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을 하다 갑자

기 날아든 달걀에 얼굴을 맞았다.

 

달걀을 닦아낸 노 전 대통령은 “달걀을 맞아 일이 풀리면 얼마든

맞겠다”고 했다. 기자들에게도 “정치를 하는 사람은 달걀을 한 번

씩 맞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화가 좀 풀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2008년 이라크를 방문 중이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라크인의 선물이자 작별 키스다.

이 ×자식아!”라는 외침과 함께 신발 한 짝이 부시를 향해 날아

들었다.

 

신발을 던진 사람은 이라크 TV 방송사인 알바그다디아에 근무하

는 알자이디 기자였다. 이 사건으로 알자이디는 징역 3년형을 선

고받았으나 부시 대통령이 선처를 요청해 9개월 만에 풀려났고

이후 아랍 세계에서 일약 영웅으로 떠오르며 국회의원이 됐다.

 

달걀 투척도 모욕적인 것이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 신발로 상대

방의 얼굴을 때리는 것은 최고의 모욕행위에 해당한다.

지난 16일 국회의사당 본관 2층 현관 앞에서 정모(57) 씨가 국

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

해 신발을 벗어 던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러나 법원은 “구속의 상당성 및 필요성이 부족하다”며 기각했

다. 정 씨는 “문 대통령이 가짜 평화를 외치고 경제를 망가뜨리

면서 반성도 없어 신발을 던졌다”고 말했다.

 

영장청구가 무리했다. 지난 18일 시내에서 열린 정부의 부동산정

책 규탄 집회에서도 참석자들이 ‘신발 투척 퍼포먼스’를 벌였다.

달걀이나 신발 모두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폭력 행위인 것

은 맞지만, 이마저도 사법 처리를 남발한다면 ‘국민의 화(火)’는

어디서 풀어야 하나.

 

더욱이 법원은 다른 사람에게 달걀을 던지는 행위도 일반적인

폭행보다 더 모욕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벌금 250만 원을

고했다. 현 정권은 DJ·노 정권을 이어받았다는데 ‘담대한 마음’

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