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 문화일보 논설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장인의 과거 경력이 문제 되자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되받았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민심에 꽂히면서 대통령 당선에도 크게 기여한 요인이 됐다.
그런 노 대통령이 2009년 자신의 뇌물 수수 사건이 사회문제로 번지자
“저의 집에서 받아 사용했다”면서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지목했다.
‘대만판 노무현’으로 불렸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또한 권력을
잡기 전과 후의 발언이 노 대통령과 흡사했다. 그가 선거 유세 과정
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부인을 극진히 보살피는 장면이 여러 번
매스컴을 탔다.
아내를 두 손으로 안아 옮기는 사진 장면이 많은 국민을 감동하게
했다. 그의 당선 과정에 플러스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랬던 천수이
볜이 같은 해인 2009년 총통 재임 시절의 뇌물 사건으로 구속되면
서 이렇게 말했다.
“뇌물도 아내가 받았고, 돈 관리도 아내가 해서 나는 모른다.”
대통령은 아니지만 한때 진보 좌파 진영에서 대통령감으로 추앙받던
조국 전 법무장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장관 취임 직전에 가진 8시
간에 걸친 기자간담회에서 “이과 쪽 논문이라 몰랐다” “사모펀드 자
체를 몰랐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여기서 그쳤으면 다행이나, 그 역시 “아내가 해서 몰랐다”는 말로
간담회를 장식했다. 조국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김의겸 전
대변인은 어떤가. 지난해 3월 흑석동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대변
인직에서 사퇴하면서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투자한 것”이
라며 시류(時流)에 올라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된 김홍걸
의원이 지난 총선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고에서 10억 원가량의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 분양권을 뺀 채 신고한 것으로 밝혀지
자 역시 난 몰랐다는 투로 나오고 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아내 임모 씨가 재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김 의원은 분양권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뇌물 변명 이후 세간에서는 한때 ‘아버지가방에들어가
신다’를 패러디한 ‘아내가했다’라는 글이 유행했다. ‘아내가 했다’
는 것인지 아니면 ‘아 내가 했다’는 것인지 헷갈리는 표현으로
일종의 야유였다.
갈수록 남자의 향기를 느끼기 어려운 세상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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