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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 선동의 추한 퇴장

조 쿠먼 2020. 11. 10. 07:02

 

‘탈진실’ 선동의 추한 퇴장

 

이관범 사회부 차장 frog72@munhwa.com

 

대접전 끝에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승리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외교, 경제,

안보, 정치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영향도 크겠지만,

 

이 같은 체계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반인 ‘팩트’(사실)와 ‘트루스’(진실)를 대하

는 사회·문화 체계 등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을 것이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됐을 당시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

(탈진실)를 선정했다.

 

옥스퍼드 사전은 사실, 진실보다 감정에의 호소가 사회에서 더 잘 통하는 현상을 일

컫는 포스트 트루스를 선정한 배경에 대해 미 대선 과정에서 많이 사용된 때문이라

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사실상 포스트 트루스 시대를 연 주역에 트럼프 대통령을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도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끝판왕’다운 면모를 일관

성 있게 보여주고 있다. 오랜 승복 전통을 깨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가장 부

패한 선거” “우편 투표 재앙” 등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권력 이양 과정의 ‘대혼돈’을

예고하고 있다.

 

역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많은 공적이 있겠지만, 사실과 거짓

의 판단을 무너뜨린 포스트 트루스 사회로 전 세계를 이끈 것은 최악의 유산으로

평가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수년 전에 “민주사회의 핵심인 사실에 대한 대중의

믿음 자체가 침식당했다”고 평가했다.

 

믿고 싶지 않으면 사실과 진실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처럼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이 ‘탈진실 시대와의

결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권 기간의 공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그의 탈진실

언행에 묻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반대 막대 구부리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포스트 트루스 사조를 조장해왔다는 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각

종 권력 비리 의혹이나 부실 정책의 민낯이 드러날 때마다 더 뻔뻔하게, 실체적 진

실을 규명해야 할 검찰과 감사원을 몰아붙이면서 덮는 데만 급급해 왔다.

 

여권 인사들은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초래한 라임, 옵티머스 사모펀드 수사와 국

가 에너지 산업의 핵심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 버린 탈원전 정책에 대한 감사·수사가

진행될 때마다 매번 “정치 수사, 감사”를 벌인다며 압박하기 일쑤였다.

 

특히 인사권, 감찰권, 지휘권을 죄다 동원해서 검찰을 옥죄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언행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을 뺨칠 정도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와의 결별을 놓고 기로에 서 있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각종 비리와 의혹을 은폐하고 옹호하기 위한 조직적인 저

항은 어느 때보다 거세다. 헌법에 뿌리를 둔 사정기관인 검찰과 감사원의 역할은 어

느 때보다 중요하나 그만큼 외풍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과거 대통령의 친구와 측근을 구속기소한 전직 검사장은 사석에서 “권력비리 의혹

수사는 목숨 걸고 할 수밖에 없는 검사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망을 달군

일선 검사들의 결기가 금방 데워졌다가 식는 ‘냄비’가 아니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