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쿠먼
2020. 11. 21. 07:43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미국은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념을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했다. 같은 해 12월 백악관이
발표한 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도,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
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하나의 공간으로 보는 개념은 20세기 초부터 있었지만 2007년
인도를 방문한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인도 의회 연설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의 합류(Confluence of the Two Seas)’를 제시하면서 최초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의 용어 변경은, 단순히 지역(공간)에 대한
호칭 변화가 아니라 중국에 대응한다는 ‘전략(strategy)’의 변화가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이 이미 ‘전략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핵심축(린치핀·Linchpin)”이라고 발언
했다.
언론들이 이 발언을 놓고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한 것’이
라고 해석하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자 공지를 통해 “인도·태평양은 지리적
표현이지 인도·태평양 전략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과연 그런가.
청와대 설명에는 3가지 정도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전략적 공간’이라는 개념을
무시하고, 전략과 지역 개념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억지’다. 미 의회 상원외교위원
장까지 지낸 바이든 당선인이 ‘인도·태평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미 하원이 18일(현지시간) 통과시킨 한·미 동맹 결의안에도 한·미 동맹의 역할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사실을 명시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는
우리 정부의 속내를 드러낸 실수다.
청와대의 설명은 ‘중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인·태 전략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는 속마음을 노출하면서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켰다. 셋째는 해석의 영역까
지 침범한 점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속마음까지 해석하려 했고, 언론의 해석도 강제
하려 했다.
지난 15일 가입서명 당시 문 대통령이 “역사적 순간”이라고 했던 ‘역내포괄적경제
동반자협정(RCEP)’을 놓고도 청와대와 바이든 당선인의 생각은 정반대다. 청와대
는 “RCEP를 미·중 대결의 관점으로 봐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RCEP와 관련,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이 지역에서 유일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결과를 좌우하도록 하는 대신 우리가 이 길의 규칙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중국 견제구를 날렸다.
미국 정권교체기지만 문재인 정부가 외교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은 이처럼
청와대의 짧은 설명 하나에서도 읽힌다. 전직 외교부 최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한
국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선택권 자체를 없애는 게임의 룰’
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부통령이던 2013년 8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했던 “미국의 반
대편에 베팅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