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쿠먼
2020. 11. 28. 07:17
[분수대] 안전운전
[중앙일보]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모 이동통신사의 내비게이션 앱에서 ‘운전 점수’가 높으면 자동차 보험료 할인
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건 한 달 반쯤 전 일이다. 새로 차를 사면서 보험 상담을
했는데 상담 직원은 “O맵 운전점수가 61점 이상이면 최대 11%를 할인해준다”
고 말해줬다.
평소 쓰던 앱인데 점수를 확인해보니 40점이었다. 근래 몇번의 접촉사고로
할증이 붙은 터라 구미가 당겼다. 상담 직원은 “간선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정속 주행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다”고 조언도 해줬다.
어차피 새 차 길들이기 기간이니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사실 간
단한 일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한강 다리를 건너는 램프에서 규정 속도를
15㎞/h 이상 초과하면 ‘과속’으로 점수가 깎이는데, 이렇게 달리면 뒤에서
경적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보험료 좀 아껴보겠다고 안전운전을 하다 보니 느리나마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름쯤 지났을까.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 감점 요인도 없
었는데 기껏 쌓아둔 점수가 10점이나 깎인 것이다.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객센터에 항의해봐야 너무 옹졸해 보일 것 같았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차차 여유가 생겼다. 새 차에 반자율주행 기능이 있는
터라 속도를 맞춰놓고 2·3차선으로만 다녔는데 차선을 바꿔가며 급하게
다니던 시절보다 딱히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음악을 들을
여유도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험 할인 혜택은 받지 못했다. 주행거리 특약과 동시 할
인이 안 되는데 주행거리 특약 혜택이 더 컸기 때문이다. 생각보단 화가
나지 않았다. 할인받았으면 목적은 달성한 것이니까.
직업상 오랫동안 급하게 운전했다. 고백하자면 통화하다가 접촉사고를 낸
적도 있다. 그런데 초보처럼 안전 운전을 해 보니 딱히 나쁠 게 없었다. 화날
일도 줄었다. 끼어드는 차는 양보해주고, 노랑 신호등에서는 차를 세우고
음악을 들었다.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교통사고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실수와 부주의라고 말한다. 완전 자율
주행 시대가 살아생전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안전운전을 계속할
생각이다. 참고로 이번 달 내 운전 점수는 99점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