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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20번 문항 [횡설수설/이진영]
조 쿠먼
2020. 12. 5. 06:47
한국사 20번 문항 [횡설수설/이진영]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문제의 난이도나 오류에 관한 논란이 시작된다.
2019학년도엔 ‘국어 31번’이 문제였다. ‘구는 무한히 작은 부피 요소들로…’
로 시작되는 난삽한 지문 탓에 물리시험 같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일부 수험생들은 ‘불수능 때문에 피해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수능 역사상 최악의 문항은 2014학년도 ‘세
계지리 8번’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
정(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보기를 정답으로 출제했다.
문제는 교과서의 기술과 반대로 NAFTA가 더 크다는 데 있었다. 평가원은
교과서에 맞는 답만 정답으로 채점했다가 법원이 오류를 인정하자 ‘오답’을
적어낸 1만8800여 명도 정답 처리하고 추가 합격 등 구제 조치를 했다.
이후 수험생 9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선 1인당 위자료 200만∼
1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올해는 ‘한국사 20번’으로 시끄럽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노력도
북의 호응으로 큰 진전…’이라는 연설문을 제시한 후 이 연설이 행해진 정부
의 정책을 고르는 5지선다형이다.
그런데 1∼4번은 ‘당백전 발행’ ‘도병마사 설치’ ‘노비안검법’ ‘대마도 정벌’
로 고려나 조선시대 정책이고 정답인 5번만 현대사인 ‘남북 기본 합의서 채
택’이어서 “초등학생도 풀겠다” “수능이 장난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홍보하는 문제라는 비판도 있는데 해당 내용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이다. ▷한국사는 2017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뀐 뒤 ‘물수능’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모의고사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왜군을 물리친 전쟁’을 묻는 문제가
나온 적도 있다. ‘외국인 대상 귀화시험보다는 어려워야 한다’는 갑론과 ‘고교
생이 알아야 할 기본 역사 상식을 검증하는 시험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을박이
맞붙곤 한다.
▷영국의 BBC방송은 최근 ‘한국: 인생을 바꾸는 시험은 팬데믹에도 멈추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수능을, 신기하다는 시선을 담아 보도했다. 올
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시험을 치른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미국과 프랑스는 수능에 해당하는 SAT와 바칼로레아를 취소했고, 영국은 A
레벨 시험 대신 모의고사와 내신성적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이용해 성적을
매겼다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올해도 수능 출제가 제대로 됐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겠지만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별 탈 없이 큰 시험을 치러낸 것만큼은 평가해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