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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산타 [횡설수설/김영식]

조 쿠먼 2020. 12. 17. 06:02

 

코로나 시대의 산타 [횡설수설/김영식]

 

 

김영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2020-12-17 03:19

 

 

노르웨이의 한 일간지는 2015년 12월 산타클로스 부음 기사를 실었다.

산타가 북부 노르카프에서 227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북극 교회에서 장

례식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동심 파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화들짝 놀란 신문사는 이 소식이 오보였

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곧바로 웹사이트에서 관련 소식을 삭제한 뒤 진

상조사에 나섰지만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동심을 잃어버린 순간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자녀들이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시기를 기억하는 이가 많다. 무심

코 집 안에 내던진 선물 영수증을 아이들이 본 순간, 카드에 남겨진 산타의

글씨체가 엄마와 똑같다는 걸 깨닫는 순간 등 각양각색이다.

 

 

▷올해 모든 걸 집어삼킨 코로나19는 성탄절 풍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최근 성탄절이 내년 1월 초로 옮겨졌다는 우스개가 유행했다. 해외에서

입국한 산타가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니 늦출 수밖에 없다는 것. 성탄절

에 맞춰 선물을 주려고 이미 입국해 자가 격리 중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방역을 담당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한 전문가는

“산타는 바이러스에 면역을 갖췄다. 각국 정상들이 검역조치를 완화해 산타

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산타의 자가 격리를 걱

정하지 말라는 건데, 동심을 지키려는 WHO의 착한 거짓말인 셈이다.

 

 

▷산타의 방문이 코로나 확산이라는 ‘최악의 선물’로 번지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 산타로 분장한 자원봉사자가 다녀간 벨기에 북부의 한 요양병원에서

확진자가 무려 75명이나 나왔다.

 

 

방문 당시엔 증상이 없었고 2m 거리 두기를 지켰지만 일부 거주자가 마스크

를 착용하지 않은 게 사태를 키운 원인이었다고 한다. 산타가 슈퍼 전파자가

된 것인데,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는 산타클로스와도 충분한 거리 두기를 해

야 할 판이다.

 

 

▷꼭 흰 수염에 빨간 옷을 입고 썰매를 끌어야만 산타클로스는 아닐 것이다.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 처음 출전한 김아림이 15일 짜릿한 우승 소식을 전

했다. 1998년 박세리가 외환위기로 절망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전했던 감동이 되살아났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김아림은 4라운드 내내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해 골프 팬들과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김아림은 자신이 코로나에 걸리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

게 피해를 줄지 몰라서 불편을 감수했다고 한다.

 

 

김아림은 이런 말도 했다. “나의 우승이 누군가의 기쁨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따뜻한 마음이 바로 산타클로스의 마음이 아닐까.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