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쿠먼
2020. 12. 18. 06:43
[태평로] “우리 이니가 그럴 리 없다”
공정 정의 약속한 정권… 애초 지킬 생각도 없었을 것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 역사에 길이 남을 虛言
한국갤럽 12월2주차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조사 결과, 응답자 중 38%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긍정평가가 4주 연속 하락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또 경신했다. /뉴시스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이란 언설은 적잖은 통계가 뒷받침한다. 나라
마다 차이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절도다. 그
런데 한국만은 유독 사기 범죄가 1위다(세계보건기구 ‘범죄 유형별 국가
순위’). 대검찰청 자료를 봐도 전체 범죄 중 사기 범죄 비율이 가장 높다.
지난 10년 동안 전체 범죄는 20%가량 감소했지만 사기 범죄는 12% 증가
했다. 낮은 처벌 형량을 여러 이유 중 첫째로 꼽는다. 피해자가 ‘당할 만하
니 당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풍토도 있다. 사기에 관대하니 사기가 넘쳐나
는 것이다. 사기에 관대한 국민은 위정자의 사기에도 관대하다.
사기는 남을 속여 이익을 얻는 범죄다.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했다고, 약속을
못 지켰다고 사기라 하지는 않는다. 남을 고의로 속여 이익을 얻어낼 때 사기
라 한다. 대통령은 공정과 정의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집권했는데
지켜지지 않았다.
4년을 지나고 보니 애초 지킬 생각도 없이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대통령은 “집
값만큼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폭등했고, 서민들은 한숨만 토한다. 정
권이 부동산 정책을 24번 내놓으면서 아파트 값이 내려갈 거라고 정말
생각했을까.
근로자 소득을 높이겠다며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자 저소득층 일자리가
급속히 사라졌다. 마차가 말을 끄는 소득 주도 성장을 하면 약자들이 잘살 것
이라고 정말 생각했을까.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하라”고 해놓고선 권력
비리를 수사하는 총장을 찍어냈다. 과거 위정자들의 어떤 빈말도 대적 못 할
역사에 길이 남을 허언(虛言)이다. 협치를 말하고 협치를 한 적이 없다.
직권남용했다고 전 정권 사람들을 잡아넣고 자기들은 직권남용을 남용한다.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알려면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은 정책 실패,
무능·위선·내로남불이 아니라 사기다. 정권은 선거에 연전연승했고 국민은
피해자가 됐다.
울산 선거 공작, 월성 원전 1호 경제성 조작은 그 자체가 거대한 사기다. 여당
은 자신들 잘못으로 실시하는 보궐선거에 공천 안 한다고 해놓고 공천한다.
비례 위성 정당을 안 만들겠다고 해놓고 만들었다.
‘야당 거부권이 공수처법의 핵심’이라더니 돌아서자마자 거부권을 없앴다. 소
수 정당의 뒤통수를 쳐 법을 바꿔치기하는 신종 수법도 선보였다. 사기 정권의
관료들은 바보가 된다. 뻔히 보이는데 모르는 체 따르려니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주거 난민이 된 경제정책 수장은 자기 전셋집도 못 구하면서 “전세 물량이 늘었
다”고 했다. 일요일 밤 사무실에 들어가 원전 폐기 관련 문서를 삭제해야 했던
산업부 공무원은 ‘누구 연락을 받고 했느냐’는 추궁에 “신내림을 받았다”고 했다.
북이 표류한 우리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 불태우는 것까지 확인한 군인들은 N
LL 언저리에서 시신 찾는 시늉을 했다. 최근 갤럽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
가 38% 나왔다.
갤럽 조사는 지지 여부를 물은 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한 가지 이유만 말해
달라’고 주관식으로 묻는다. 지지자 중 30% 넘게 그 답을 ‘열심히 한다’ ‘전반
적으로 잘한다’ ‘모른다’ 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걸 찾을 수 없는데 지지 이유를 말하라니 그저 ‘열심히
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서글픈 답변을 해야 하는 정권 지지
자들을 보면서 20여 년 전 사기 피해를 본 먼 친척의 망연자실하는 표정이 떠
올랐다.
그 친척은 사기꾼으로 밝혀진 사람을 향해 끝까지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사기 피해자는 끝까지 사기꾼을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그렇게 읊조린다. ‘우리 이니가 그럴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