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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김영란법 [횡설수설/김선미]
조 쿠먼
2021. 1. 18. 06:36
고무줄 김영란법 [횡설수설/김선미]
김선미 논설위원 입력 2021-01-18 03:00수정 2021-01-18 05:17
음악가 노영심 씨가 1998년 펴낸 ‘노영心의 선물’이란 책에는 이런 이야기
가 나온다. 그는 자신의 음식 토크쇼 첫 회에 당시 김수환 추기경(2009년
작고)을 초대하면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한 끝에 베이즐(바질) 식물을
선물했다.
추기경은 방송 말미에 말했다. “향기로운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베이즐처럼 말이죠.” 선물하는 사람의 정성 담긴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받는 사람에게 잘 전달된다.
▷정부가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 설에도 공직자 등에게 줄 수 있는 농수축
산물 선물 상한액을 현행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올리는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가격 한도를 한시적으로나마 올리면 지친 농어민들에게 소중한
단비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전국 한우협회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국내 10만 한우 농가를 대표해 환영과
감사의 뜻을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추석 때에도 이들 품목의 선물 상한액을
20만 원으로 잠시 올린 바 있다.
그 결과 농수축산물 선물 매출이 전년 추석 대비 7% 늘고 10만∼20만 원대
선물이 10% 늘었다고 한다. 유통업계도 위축된 소비심리가 다소 풀릴 것으
로 기대하면서 이번 설 선물세트에 프리미엄 한우와 굴비 물량을 20∼30%
늘려 내놓았다.
▷우리나라 선물 가격에 상한선이 매겨진 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
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2016년 시행되면서부터다.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선물 상한액을 5만 원으로 정하면서 농수
축산물에 대해서는 10만 원까지 허용하다가 작년부터 20만 원 명절 상한선
이 깜짝 등판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 기여해 온 법이지만 결국 공직자가 더 비싼
선물을 받게 되니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도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건 법 신
뢰도 흔들리게 한다. 상한액을 현실화하거나 명절 예외조항을 두면 어떨까.
이 법에서 농수축산물 항목을 아예 빼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코로나가 ‘선물
인심’은 키웠다고 한다. 만남이 어려워지니 다들 선물이라도 두둑하게 보내는
것이다. 생일과 경조사도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간편하게 챙길 수 있는
세상이다.
‘노영心의 선물’ 책 제목 앞에는 ‘오래된 사랑의 습관’이라는 부제가 있다. 어쩌
다 평범한 사랑의 습관(선물)마저 가격의 저울 위에 달게 됐는지…. 격무에 지친
어느 날 귀가해 보니 배달돼 있는 친구의 꽃다발,
거기에 담긴 응원하는 마음을 10만 원, 20만 원으로 가격 매길 수 있나. 그 사람
이 어떤 순간에 힘든지, 언제 환하게 웃는지 살펴보는 선물의 마음을 되새겨봤
으면 한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