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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신현수 “살면서 박범계 볼일 없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 힘들어”

조 쿠먼 2021. 2. 20. 06:27

 

[단독]신현수 “살면서 박범계 볼일 없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 힘들어”

 

동아일보 배석준 기자 , 장관석 기자 , 고도예 기자 입력 2021-02-20 06:01

 

[신현수 靑민정수석 사의 파장]법조계가 전하는 신현수 사의 이유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왼쪽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재 없는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발표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오른쪽 사진)에 대한 감찰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수석은 18, 19일 휴가를 냈고, 박 장관은 검찰

고위 간부 인사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DB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의 관계에서 지

켜야 할 매너를 완전히 저버린 것 아니냐.”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

명하고 휴가를 떠난 신 수석 파동과 관련해 법조계 핵심 관계자는 19일

이같이 말했다.

 

최근 신 수석은 주변에 “앞으로 살면서 박 장관을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벽증이라 불릴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하

고 타인에 대한 평가나 발언을 삼간다는 평가를 받는 신 수석의 발언 치고

는 워낙 강도가 높은 것이어서 법조계 핵심 관계자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대통령 결재 없는 인사 발표 뒤 감찰 요구”

 

일요일인 7일 오후 법무부의 검사장급 인사 발표는 꽤나 이례적이었다. 법

무부가 이날 낮 12시경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곧 발표한다고 사전 공지했

다. 1시간 반 뒤 심재철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과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을

맞바꾸는 내용이 담긴 1장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교체를 요구하던 친정부 성향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은 유임됐다. 윤 총장은 발표 2분 전에 명단을 받았다. 신 수석은 대검 측으

로부터 법무부가 인사 내용을 발표한다는 얘기를 듣고 발표를 중단하라고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그대로 강행했다.

 

말하자면 신 수석과 윤 총장을 배제한 법무부의 단독 플레이였던 셈이다.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인사 발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식

결재가 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에

대한 감찰권이 있는 신 수석은 이를 알고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감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박 장관의 인사안을 사후

에 승인했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물밑 조율에 나서

던 신 수석 입장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검찰 인사에 대한 조율을 책임지는 신 수석은 문 대통령이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한 인사안을 사후 승인하는 것을 보고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받아들

였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분석이다.

 

법조계 핵심 관계자는 “이런 중대한 문제들로 인한 일에 박 장관이 전화를 하

겠다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신 수석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

수석과 40년을 함께해 온 한 법조인은 “신 수석이 느끼기엔 이건 나보고 나가

라는 얘기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신 수석, 올 1월 말부터 “힘들다” 토로

 

신 수석은 취임 한 달여 만인 지난달 말부터 “힘들다”고 주변에 어려움을 토

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수석은 올 1월 말 법조계 고위 인사와의 통화에

서 “힘들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 등과 통화하면서 향후 검찰 고위 인사 방향을 논의하던 때다. 법조계

고위 인사는 “신 수석이 인사 논란 하나만 가지고 결정한 것 같지 않다”며 “여

러 가지 논의 과정에서 도저히 ‘내 공간이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분위기였

다”고 전했다.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둘러싼 ‘패싱’ 논란을 넘어 국정기조 전반과 청와대 내

부 의사 결정에 대한 이견이 누적돼 사의 표명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 수석의 후배들에 따르면 그는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다른 뜻을 내비쳤

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사찰 문건 논란에도 청와대가

개입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시선을 신 수석이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 수

석은 현 정부 출범 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다.

 

이때 여러 문건 때문에 검찰 수사까지 이뤄졌는데, 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치

쟁점화하는 모습을 민정수석으로서 지켜보는 것은 불편했을 거라는 얘기다.

특히 검사장 인사안을 사후 승인한 것은 문 대통령인 만큼 신 수석이 문 대통

령에 대한 인간적인 배신감까지 느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신 수석은 가족의 반대에도 문 대통령의 부탁과 검찰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들어갔는데, 결국 문 대통령이 신 수석을 패싱한 인사안을 승

인했다”고 말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장관석·고도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