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섬나라 ‘國父’의 장례식

어느 섬나라 ‘國父’의 장례식

정지섭 조선일보 기자 입력 2021.03.09 03:00

지난 2010 년 9 월 27 일 파푸아 뉴기니 총리였던 마이클 소 마레 (Michael Somare) 총리가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 65 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있다. /AP 연합뉴스

 

한국에서 남동쪽으로 약 5000㎞ 떨어진 곳에 섬나라 파푸아뉴기니가

있다. 면적과 인구 모두 오세아니아주에서 둘째다. 남태평양의 관문이

라고 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면서, 1000여 부족이 800여 언어를 쓰는 다

부족·다언어 국가, 천연자원의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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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감 넘치는 이면에는 오랜 부족 갈등과 치안 불안, 저개발과 만성적

빈곤 등의 고민도 안고 있는 나라다. 그런 파푸아뉴기니가 모처럼 차분

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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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부터 보름 일정으로 국장(國葬)에 들어가면서 그랬다. 호주

식민지였던 이 나라 독립을 이끌고, 근대 국가의 기틀을 다진 국부(國父)

이자 초대 총리 마이클 소마레(84)의 장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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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매체들은 소마레 이름 앞에 ‘대족장(Great Chief)’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그의 장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장례

를 치를 때 ‘하우스 크라이’라는 상가를 차려놓고 문상객이 모여 장엄한

추모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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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기간은 최장 이레를 넘지 않지만, 본영결식 전 온 나라를 열 곳으로

나눠 하룻밤씩 대족장의 ‘하우스 크라이’를 차리느라 보름으로 훌쩍 늘어

났다.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구름 인파가 몰려들어 추도사와

노래로 고인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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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절 태어나 교사와 방송인을 거쳐 정치에 입문한 소마레는 세 차

례(1975~1980, 1982~1985, 2002~2011년) 집권하면서 반대파를 중용

하는 등 정치적 화합에도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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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가 전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 중 드물게 민주주의 체제를 유

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20세 이하 여자 축구 월드컵(2016년)과 아시아태

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2018년)를 개최할 정도로 발전을 이룬

것도 소마레가 국가 운영의 틀을 다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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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낯선 지도자에 대한 애도 열기가 남달리 다가오는 까닭이 있다. 나

라의 초석을 닦은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정파를 초월한 존경, 이 당연한 모

습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다는 비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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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지도자라 해도 개인사나 정책적으로 흠은 있을 것이고, 비판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건국을 이끌고 발전을 이룩한 지도자들이

일생을 부정당하며 나아가 혐오 대상으로 전락한 나라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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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세력과 추종자들이 합세한 건국 지도자들에 대한 증오 선동으로, 이제

6·25 풍전등화에서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파묘(破墓) 가능

성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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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려면 용기를 내야 하는 나

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건국 세력을 혐오하고 국가 정통성 부정을 당연

한 것처럼 여기는 나라에 있다 보니, 파푸아뉴기니 국부에 대한 추모 열기가

낯설면서 또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