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비윤리적인 윤리주의자들의 업보

조 쿠먼 2021. 3. 20. 07:39

 

비윤리적인 윤리주의자들의 업보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20 00:30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내 이럴 줄 알았다.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고, 올 것은 오고야

마는 게 세상 이치다. 똥을 푸지게 싸 놨으니 똥파리가 끓는 건 피치

못할 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말이다.

 

LH사태 조국 때부터 예상된 일

대통령부터 범죄자에 빚 느끼고

우리편은 괜찮다는 메시지 보내

지금이라도 다잡아야 최악 면해

 

조국 민정수석 당시의 온갖 잡음서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연이은 인

사 검증 실패로 고위 공직 후보들이 줄줄이 자격 미달로 드러나도 책

임지는 사람이 없을 때부터, 대통령이 그 추한 민낯들의 임명을 강행

했을 때부터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그래도 된다.”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에 내부 경종이 울리는데도, 경종을 울린 사람

을 오히려 다른 책임 지워 내쫓아버렸을 때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

편은 괜찮다.”

 

대통령의 30년 지기가 8전9기 당선된 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이

꼬리를 무는데도, 해명 대신 궤변으로 일관했을 때 메시지는 확실했다.

“우리가 옳다.”

 

결국 비판의 화살이 새로 임명된 조국 법무장관에 쏠리고 그 가족들로

번져 상상도 못 했던 비리들이 드러났을 때, 그러자 조국 쪽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성(聖)가족’을 두남두고 오히려 비판자들을 적폐요

개혁 저항 세력으로 몰아붙였을 때 메시지 역시 명쾌했다.

 

“우리는 무조건 옳다.”

 

이후 조 장관이 사퇴하고 부인이 구속됐으며 조 장관 동생이 구속되고 조

장관 마저 기소됐음에도,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와 “조 전 장관에게 마음

의 빚을 졌다”고 말할 때 메시지는 오직 하나였다. “우리가 곧 정의다.”

 

그러니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성추행 호소인’이라고

부르자는 얘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여성 의원들이 맨정신으로

말이다. 다른 사람이야 눈앞 이익만 따져 그런 거라 쳐도, 여성단체 대표

출신인 남인순 의원은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그가 박 전 시장은 우리 편이니 잘못한 게 없고 피해자가 의심된다는 투

로 말하는 건 자기 인생에 대한 부인이자 배신이었다.

 

선데이칼럼 3/20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 사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이

부끄럼 없이 국민대표 노릇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

다. 여기에는 한일관계까지 끼어든다. (말로만이지만)

 

청산하기 좋아하는 이 정권은 역사적으로 (특히 보수정권 아래서) 친

일파 청산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게 몹시 불만이다. 따라서 일본

에 각을 세우는 사람이나 단체는 쉽게 우리 편이 된다.

 

일·중·러 삼국 사이에서 한없이 무능했던 고종 마저 일제에 대항한 황

제로 미화되는 마당이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추구한다는 정의기억연

대 같은 연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이사장을 지낸 윤 의원이 횡령과 사기 혐의 기소돼도 그냥 우리 편

이고, 우리 편이니 그 잘못 앞에 쉽게 눈이 감긴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창피해서 이민이라도 가려 할 텐데, 조국 전 장관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른다. 사사건건 말참견을 하며 나중에 또 어떻게

부메랑이 돼 날아올지 모르는 어록을 채워간다.

 

망자인 박 전 시장은 말이 없는데, 주변인들이 피해자를 향해 복수의 2,

3차 가해를 멈추지 않는다. 대놓고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여검사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숨죽이고 숨어있던 피해자가 직접 나와 살려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빚을 갚고 싶었던 대통령처럼, 정의연이 또 윤 전

이사장이 잘했건 못했건상관없다. 부정수령한 것으로 드러난 국가보조

금도 환수할 생각이 없고, 검찰 기소 후에도 예정된 보조금은 꼬박꼬박

지급한다.

 

이렇게 행동해온 대통령과 정부가 어떻게 공직자들에게 도덕성과 정의를

요구할 수 있겠나. 역대 어떤 정권이라고 꼴뚜기들의 일탈이 없었겠나 마

는, 이번 LH 경우처럼 전방위적이고 비도덕적인 예는 찾기 어렵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가 범죄행위인 줄 인식하지 못하고 회사가

주는 ‘특혜’라 믿을 정도다. 그게 꼬우면 이직하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공직

자를 이전엔 본 적이 없다.

 

어디 LH뿐이랴. 어떤 공공기관이건 (심지어 그들을 감시해야 할 선량들마

저) 얼마나 크던 작던, 미리 알게 된 이권을 삼키려고 눈에 불을 켠 꼴뚜기

들이 지금도 어물전을 흩트리고 있으리라.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탁할

수밖에 없고, 우리 편에만 서면 되니 죄의식조차 거추장스럽다.

 

청와대건 정부건 윤리적이지 못한 윤리주의자들로만채워져있으니 안 그럴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콩트스콩빌의 구분을 빌린 말이다. “윤리적

이라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윤리주의자가 되는 건 다

른 사람이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

 

이런 결과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을 터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면 최악은 면할 텐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채

근담』에 도움이 될 만한 교훈이 있다. 저들의 새드엔딩은 관심 없으나, 애먼

국민이 고황에 골병드니 하는 말이다.

 

“부귀와 명예가 도덕에서 온 것은 수풀 속의 꽃과 같아 절로 잎이 피고 뿌

리가 뻗을 것이요, 공업(功業)에서 온 것은 화분 속 꽃과 같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흥폐가 있을 수 있으며, 권력에서 나온 것은 화병 속의 꽃과

같으니 시듦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