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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금융 교육은 생존 수영”

조 쿠먼 2021. 3. 27. 06:36

[기자의 시각] “금융 교육은 생존 수영”

유소연 조선일보 기자 입력 2021.03.27 03:00

“우리 학교에도 금융 교육을 하러 와 주세요.” “학생은 돈을 몰라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국금융교육학회와 한국교원

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9~13일 실시한 설문 조사에 중·고생들은 이

런 의견을 쏟아냈다.

보통 설문에서 주관식 항목은 건너뛰거나 쓰더라도 단답형에 그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 학생이 금융 교육이 꼭 필

요하다며 정성스럽게 답을 썼다.

이번 설문은 우리 아이들의 금융 지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보여줬다.

68%는 ‘은행에서 파는 금융 상품은 전부 원금이 보장된다’고 잘못 알

고 있었다. 은행에서도 펀드 등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예금과 적금의 차이를 모르는 학생도 65%나 됐다. 금융 교육은 시장경

제에서 선택의 자유에 따른 책임을 알게 해주는 교육이다. 라임·옵티머

스 같은 금융 사고에 우리 국민이 취약한 이유는 금융 교육을 제대로 받

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응답 학생 10명 중 2명만이 ‘금융 교육을 받아본 적 있다’고 했다. 교실

에서 금융을 가르치지 않으니 학생들은 금융 문맹이나 다름없다. 본지는

이 같은 실태를 지난 22일 ‘금융 문맹 방치하는 나라’라는 기사로 썼다.

미국·영국·캐나다 등은 금융 교육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친다. 미

국은 50주(州) 가운데 45주에서 금융을 가르친다. 부채 관리와 소득 신

고, 세금 보고서 작성법까지 교육한다. 반면 우리는 기약이 없다.

2년 전 전국 17개 시·도 청소년 대표들이 참여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기구

청소년특별회의가 교육부에 “금융 정규 교육을 의무화하자”고 제안했지

만 교육부는 “현재 교육과정에도 금융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받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 교육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고1 통합사회 교과

에서 배우는 금융은 연간 2~3시간 분량에 그친다. 고2부터는 학교에 경

제 과목이 개설돼 있고 본인이 선택해야만 금융 교육을 좀 더 받을 수 있다.

경제 과목이 개설된 고교는 약 27%뿐이다. 정부 내에 금융교육협의회라

는 조직이 있다.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등 6개 부처가 참여한다.

12년 전 만들어졌는데 금융을 별도의 정규 과목화하는 방안은 제대로 추

진해본 적이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모든 과목 중 금융만 특별히 더 중요

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초등학생에게 생존 수영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4연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금융 문맹

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라는 말이다.

이제라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