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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를 ‘민족주체고’로 바꾸려는 이유

조 쿠먼 2021. 4. 28. 06:22

민사고를 ‘민족주체고’로 바꾸려는 이유

곽수근 조선일보 기자 2021.04.28 03:00

식재료 새벽 배송으로 국내 시장을 사로잡고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인 마켓컬리, 허리둘레·식습관·운동량 등을 감지하는 스마트 벨트

로 유명한 웰트. 두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창업자인 대표가 자율형사

립고(자사고)인 민족사관고 출신이라는 점이다.

올해 개교 25주년을 맞은 민사고는 졸업생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자진 폐교를 검토 중이다. 정부가 2025년 3월

부터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강제 전환하기로 예고해

학교 존립이 4년밖에 안 남은 시한부 수명이기 때문이다.

도심에 있는 다른 자사고·외고와 달리 민사고는 강원도 횡성 외곽에

자리 잡은 기숙형 학교다. 지금은 전국 학생이 지원할 수 있지만 4년

후 일반고로 바뀌면 강원 지역 학생들만 지원 가능해 정원조차 채우기

어렵다는 게 학교 입장이다.

폐교 위기에 놓인 민사고는 학교명을 ‘민족주체고’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앞서 지난해 9월 학교법인 이름을 민족사관학원에서

민족주체학원으로 바꿨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상시키는데 왜 바

꾸느냐”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절박함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이런 상황을 감수하고 있다고 한다.

민사고는 “설립자(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가 학교를 세울 때

교훈의 첫머리에 나오는 민족 주체를 학교 이름에 담으려고 했지만

주체라는 단어의 이념적인 선입견이 강해 사관이라는 단어로 대체

했다”며 “통일 이후 민족주체고로 바꾸려 했는데 2025년 이후에는

학교 존립이 어려워 설립 당시 구상했던 이름이라도 대한민국 교육

사에 남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사고처럼 자사고로 운영되는 학교와 외고·국제고는 정부로부터 예

산 지원을 받지 않는다. 등록금으로 교사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충당

하고 있다. 이 학교들을 일반고로 전환하면 인건비·운영비 등을 정부

예산으로 대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일반고 전환으로 추가 투입해야 할 예산이 연간 26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전국 모든 고교에 연간 1억원씩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을 멀쩡한 자사고·외고 죽이기 대가로 쓰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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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학생·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자사고·외고는 없애기로 한

반면, 학력 저하 문제가 논란인 혁신학교는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대폭 확대하고 있다.

혁신학교는 교사의 수업 자율권을 확대하고 학생 인권을 강조하는 학

교로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강조하는 공교육 강화 모델이다. 일반

초·중·고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연간 평균 3000만원 정도 예산을

추가 지원받는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1164개였던 혁신학교 수는 올해 2165

곳이 돼 2배 가까이로 늘었고, 지난해 지원액은 6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4년간 지원액은 2000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서울의 일부 혁신

학교는 학부모들 반대로 무산되는 등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민 세금을 추가 투입하고도 외면받는 혁신학교는 확대하고, 자립 재

정으로 운영되는 자사고는 문을 닫는다는 정부가 교육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서울의 한 학원 운영자는 “장사가 잘되면 임차인 내쫓고 그 가게를 차

지하는 건물주 행태나, 자사고·외고 없애고 혁신학교 밀어주는 현 정부

방침이나 ‘잘하는 쪽 발목 잡는 것’은 같은 것 아니냐”고 했다.

학교가 사라지기 전에 이름이라도 민족주체고로 바꾸겠다는 민족사관

고의 외침은 자사고 죽이기를 멈춰달라는 요청에 귀를 닫은 정부를

향한 몸부림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