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4·27 쇼’ 3년…안보와 국격 허물었다
조 쿠먼
2021. 4. 29. 06:33
전성훈 前 통일연구원장 국민대 겸임교수
인간 방패를 대동하고 판문점에 나타난 김정은이 계산된 화술과 현란한
몸짓으로 한국 사회를 흔들어 놓은 지 27일로 만 3년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핵 문제도 해결될 것이란 장밋빛 희망으로 온 나라가 술렁
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북한 독재정권에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림받았으며 나라 안팎에서 파열음
이 나고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핵을 가진 북한이 대
한민국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분단 이후 최대의 정치 이벤트
로 기록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핵을 포기하고 변화
할 것으로 믿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햇볕정책을 더 세게 밀어붙인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북한의 독재를 강화하고 핵 개발을 부추긴
반면 북한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진실을 외면했다.
더 나아가 ‘평화’라는 미명 아래 군사훈련을 축소하고, 외교장관이 북한의
전방초소(GP) 총격이 ‘굉장히 절제’됐다고 하는 등 북한의 도발을 평가절
하하는 우려스러운 사태가 일상화했다. 북한 정권이 극력 반대하는 대북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마찰도 불사하는 지경이다.
판문점 선언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북한의 핵 폐기를 뜻하는 것인
지도 불확실하다. 바로 다음에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
다’고 적시한 것은 한국의 의무 사항도 있다는 뜻인데, 한국은 이미 핵을
포기하고 비핵화 공동선언을 완벽하게 이행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역할과 책임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조정을 뜻한다면 이는
김일성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 유훈을 들어주겠다는 것으로, 그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다.
지금도 북한은 매년 6∼8개의 핵탄두를 만들고 있다. 장거리미사일은 물론
회피기동과 핵무장이 가능한 단거리미사일도 개발 중이다. 풍계리 핵실험
장 폐쇄가 핵 개발 포기의 신호라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이 실험장은 핵 개
발이 완성돼 그 사명을 마쳤기 때문에 폐쇄한다고 김정은이 스스로 밝혔다.
문 정부의 평화 지상주의는 화려한 말과 이벤트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국가 생존의 위기를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백주에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환부가 썩어 고름이 흘러내린 것과 같다.
국민 보호를 일차적 책무로 여기는 정부라면 핵을 가진 북한의 더 과감하고
무모한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문 정부가 남북 관계에 올인하면서
한미동맹 간에도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문 대통령이 최근 외신 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변
죽만 울리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자 트럼프가 즉각 반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서도 싱가포르 미·
북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라고 했다.
두 발언 모두 남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려는 문 대통령의 초조함이 묻어나는
언급이지만,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외교적 결례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후 지난 3년의 남북 관계는 국민 보호와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
국가안보가 정치 이벤트의 제물이 돼 국민의 안전은 더 위험해졌고 국격은
더 실추됐다. 북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내부를 정비하는 것은
차기 정부의 최대 과제다.
문화일보 4 월 28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