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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군대? 당당한 군대? 졸병들의 'SNS 소원수리' 도발

조 쿠먼 2021. 5. 1. 07:26

당나라 군대? 당당한 군대? 졸병들의 'SNS 소원수리' 도발

[중앙일보] 입력 2021.05.01 05:00

육군 관련 소식이 공유되는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

드립니다'. 페이스북 캡처

“당나라 군대냐, 당당한 군대냐.”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군인들이 잇따라 군 내부 사정을

‘폭로’하자 40대 남성 김모씨가 30일 이렇게 말했다. “과거 군 생활에

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다.

그는 “당나라 군대(군기가 약한 병사들을 비유하는 말)라고 해야 할지,

당당한 군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들이 이런 말

을 하는 건 최근 군·경의 ‘막내급’ 병사들이 거침없이 올리는 SNS 글

때문이다.

조직 내 불만이 가감 없이 표출되는 현상은 최근 잇따르고 있다. 군에서

는 ▶격리 장병의 부실 도시락 ▶생일자 케이크 예산 ▶코로나19 방역

을 이유로 한 화장실 이용 제한 등의 문제가 온라인에 까발려졌다.

경찰은 ▶남녀 기동대 형평성 논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불만 등이 공론화됐다. SNS 내부고발자들은 폭로 이유로 ‘빠른 시정’을

댈 정도로 당당하다. 내부 보고를 거치는 것보다 외부에 ‘폭로’해 공론화

하는 것이 반응이 더 빠르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두고 “합리성·공정성을 추구하는 세대가 만든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안보와 기강이 중시되는 조직에서

과도한 폭로가 나오는 것은 모순이자 해악”이라고 우려한다.

지난 18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 자신

을 51사단 예하 여단 소속이라고 밝힌 게시자가 일회용 도시락 용기

에 제공된 급식 사진을 올렸다. 게시자는 휴가 복귀 후 격리 중 부실

한 급식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캡처

30세의 현직 군인인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젊은 병사들

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사회에 익숙한 반면 규정과 시스템은 잘 바뀌

지 않는다. 간부들의 눈높이 또한 젊은이들의 문화와 사회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SNS에서 이뤄지는 내부 폭로에 대해서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병사들

복지나 생활여건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긍정적 변화로 본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군이 스스로 국민 눈높이에 맞춰 사전 점검을 하면 좋겠

다”고 말했다.

 

육군 관련 소식이 공유되는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

니다’의 관리자는 지난 25일 “보고하면 일주일, 제보하면 3시간”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단의 한 변사가 병사가 “일주일째 온수가 나오지 않아 산속 오지에서

기약 없는 찬물 샤워만 하고 있다”고 지난 24일 이 페이지에 하소연하자

그날 밤 온수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다.

 

군인들 입장에서도 이런 폭로의 효능감은 높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4월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부 부대에서 코로나19 확산방지

를 위한 조치과정 중 발생한 격리 장병 급식 부실, 열악한 시설제공 등으로

큰 심려를 끼쳤다”고 사과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9일 “군 훈련소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나서겠다”며

“특히 감염병 예방을 목적으로 훈련병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

지 등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경기동대 무용론’ 등 남녀차별에 대한 불만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 올라온 뒤 김창룡 경찰청장은 “남경·여경 기동대가 맡은

역할과 임무가 다르다”며 관련 사안을 거론했다. 김 청장은 또 AZ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높자 “본인 동의하에 예약하면 된다”고 했다.

 

20대 경찰관은 “젊은 경찰은 대부분 하위직이니 문제 제기가 부담스럽

다”면서 “하지만 SNS에서 익명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공론화되고 윗선

이나 기관 차원에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니 폭로가 잇따르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책임자급으로 올라가면 의견은 엇갈린다. 경찰 간부 B씨는 “젊은 직원

들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그래야 조직이

발전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 C씨는 “내부적 논의를 거쳐 해결법을 찾는 과정에서 자생

력도 길러질 것”이라며 “인터넷 폭로가 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국가 안보와 안전을 다루는 경찰관은 목소리를 낼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군 인권센터의 한 관계자는 “내부 기능의 마비로 신고해봤자 통하지

않으니 외부에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라며 “병사들은 상부에 보고해

도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고 최근의 흐름을

반겼다.

이 관계자는 “인권위나 권익위 등 외부 기관에 진정을 넣는 경우 절차가

간단치 않고 시간은 수개월씩 걸리기 때문에 SNS라는 빠른 경로를 선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 조직이 그동안 계급과 상명하복이

도드라지는 문화를 갖고 있던 데 반해 젊은 층은 평등·공정·투명과 같은

키워드를 체화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문화 지체 등 충돌 현상이 발생하

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요즘 2030세대는 겉과 속이 다른 것에 반발한다”며 “젊은 층

에서 보수당을 찍은 비율이 높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며 경찰과 군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체나 기회가 다양해진 것도

이유로 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혜·권혜림 기자 kim.jihye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