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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26. 06:52 카테고리 없음

[新중동천일야화] 요르단 왕실 쿠데타說…

동생 대신 아들로 승계 변경이 혼란의 불씨

폐위된 왕세제 함자, 이복형인 현 국왕을 비판하다 가택 연금

수년 전부터 경제난 극심…일부 국민도 왕실 비판하며 시위

아랍 최고 명문가지만 무능·부패 계속되면 위기는 다시 온다

인남식 교수 조선일보 입력 2021.04.26 03:00

아랍 최고의 유명 가문은 어디일까? 아마 열에 아홉은 선지자 무함

마드의 직계인 하심(Hashemite) 가문을 꼽을 것이다. 1차 대전 후

패전국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새로 세워진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요르단의 왕실을 하심 가문이 맡았다.

현재 유일하게 남은 하심 가문이 요르단 왕정이다. 주변국이 분쟁으로

시달릴 때도 요르단만큼은 안정의 상징이었다. 4월 초, 느닷없이 요르

단에서 궁정 쿠데타설이 돌았다.

전(前) 왕세제 함자 왕자가 이복형인 압둘라 2세 현 국왕을 거세게 비판

하다가 감금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왕실은 즉각 엄중 경고와 함께 일부

인사들을 체포하면서 진화를 시도했지만, 가택 연금된 함자가 BBC를

통해 자신이 억압당하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결국 가문의 어른이 나섰다. 국왕의 삼촌 하산 왕자였다. 그는 조카 함자

를 불러 국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아울러 미국과 인

근 아랍 왕국들이 압둘라 국왕 지지를 천명한 터라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놀랐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요르단의 힘은

왕실 구성원의 연대에서 나온다고 믿었기에 이번 소동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사람들은 배경을 궁금해하고 있다. 이 사건 뒤에는 왕실의 내밀한

이야기가 있다.

선왕 후세인 국왕 때 이야기다. 본래 후세인의 왕위 계승자는 아들 현 압둘

라 국왕이 아니었다. 동생 하산이었다. 하산은 1965년부터 왕세제를 맡아

형을 보좌했다. 특히 왕이 암으로 투병하던 말기에는 실질적 통치자 역할을

했다. 누가 봐도 다음 왕은 하산이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병석에서 갑자기 동생 하산 대신 아들 압둘라를 다음 국

왕으로 내세웠다. 불과 타계 3주 전이었다. 하산은 35년 동안 나라의 이인

자였다. 숱한 인사들이 미래 권력 하산에게 이미 줄을 섰다.

이 와중에 일어난 급작스러운 승계 변경은 하산과 추종자들에게 청천벽력

이었을 것이다. 하산 본인 심정은 어땠을까? 정보기관과 군에 그의 사람들

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병석에 누운 국왕의 뜻을 거역하

고 조카를 내칠 수 있었다.

자칫 피바람이 불 수도 있었다. 구중궁궐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형의 통첩을 즉각 수용하고 조카의 국왕 즉위를 지원했다.

이후 현 국왕에게 누가 될까 권력과 거리를 두었다. 정치와 선을 긋고 학

계와 유엔 등 외곽에서 활동했다.

사람들은 역시 선지자의 직계 하심 가문은 명불허전이라며 감탄했다.

선왕 후세인은 네 번째 왕비 누르(Noor) 사이에서 낳은 함자를 총애

했다. 후세인이 하산을 폐위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왕위 즉위 후 함자를

계승자로 지명하라는 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동생을 밀어낼 때 후세인은 압둘라가 아닌 함자를 왕으로 택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함자는 아직 어렸다. 의회의 압력과 왕실 전통을 고려, 결

국 손위인 압둘라를 왕으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1999년 왕위에 오른 압둘라 국왕은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함자를 왕위

계승자로 임명했다. 하지만 5년 후 함자를 왕위 계승자에서 내치고 자신

의 아들을 왕세자로 임명했다. 함자는 삼촌 하산이 그랬던 것처럼 형의

명령을 수용하고 물러났다.

그 함자가 이번 사건의 주인공으로 나타나 왕실과 각을 세운 것이다. 다

행히 피를 흘리지 않고 종결된 모양새지만 여전히 눈길이 가는 사건이다.

국제 무대에서 압둘라 국왕의 평판은 좋다. 온화하고 평화적인 이미지와

함께 군복 입은 강인한 지도자 이미지가 교차한다. 실제로 국왕은 역내

분쟁 중재를 자처하고 평화 구상을 제안하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해왔다.

미국과 걸프 왕정은 압둘라 국왕과 연대했다. 누구와도 척지지 않는 외교

를 통해 자원 빈국 요르단을 이끌어왔다. 미국은 요르단에 매년 15억달러

이상의 지원을 하고 있고 걸프 산유 왕정 역시 든든한 후원자다. 그러나

외교로 얻은 점수를 내치에서 잃고 있다.

최근 요르단은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수년 전부터 경제난이 극심

하다. 팬데믹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해외 원조가 줄고, 주 수입원인 관

광 수입과 해외 송금이 격감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부의 부패

와 무능은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면 내부 갈등선이 드러난다. 요르단 인구의 절반

이상은 팔레스타인 출신이다. 이스라엘 건국과 6일 전쟁 때 서안지구

에서 들어와 정착했다. 반면 대대로 요르단 계곡과 고원지대에 터 잡고

살아온 부족들이 있다.

이스트뱅커(East Banker, 요르단강 동안 지역 주민)들이다. 이들이 왕

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시위에 나서고 있다. 다수가 된 팔레스타인

인들과 60만명 넘는 시리아 난민의 유입으로 삶이 팍팍해졌다는 것이다.

작년 빈곤율은 2019년 대비 39% 증가했고 그 고통을 자신들이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왕실이 선주민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보다 외지인들

신경 쓰느라 바쁘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권력에서 밀려난 함자 왕자는 이 부족장들과 만나며 왕실의 무능을 비

판했다. 왕실 입장에서는 선을 넘은 것이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사

우디와 이스라엘 등 해외 세력과 연계 혐의도 나왔다. 물론 왕실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소동이 작은 일은 아니다. 폐위된 왕위 계승자가 현 국왕에

게 각을 세운 사건이다. 지켜보는 국민은 내심 누구 편을 들었을까?

국왕은 함자를 엄히 다스려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나 무능과 부패 위에

빈곤과 질병이 계속될 경우, 위기는 다시 온다. 산유 왕정이야 오일 달

러 풀어 반발을 무마할 수 있다지만, 가진 것 없는 요르단 왕실은 국민을

달랠 방법이 마땅찮다.

개혁과 소통, 자기희생과 모범밖에는 답이 없다. 명문 왕가의 본질은 혈

통이나 역사에 있지 않다. 국민을 잘살게 해야 명문 왕가다. 국제사회는

요르단 왕실이 명실상부한 명문 하심가의 전통을 세워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