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오스카 품은 윤여정
동아일보 2021-04-27 05:09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에서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
(74)이 어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데뷔한 지 50년 만에 한국 배우로는 최초
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것이다.
아시아 배우로는 1957년 일본 우메키 미요시가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
을 받은 이후 64년 만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윤여정이 이날 수상 소감에서 언급했듯 한국인들에게는 TV에서나 보는
남의 나라 잔치였다.
그런데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4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는 한국 이민 1세대의 신산한 삶을 다룬 ‘미나리’가 작
품상을 포함한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한국 영화인들이 축제의 주역이
됐다. 봉 감독과 ‘미나리’의 주연 배우 스티븐 연은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윤여정은 사랑스러운 할머니 연기로 호평받았을 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에
서도 당당하고 재치 있는 발언으로 세계인의 호감을 샀다. 이날 시상식에서
는 “내 이름을 잘못 발음해온 걸 오늘은 용서한다”며 미국인 중심주의를 유
쾌하게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언급하며 “각자 배역이 다른
데 경쟁할 순 없다.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사려 깊은 수상 소감을 전
했다. 평소 “먹고살려고 연기했다”고 말해온 그는 이날도 “일하러 나가란
두 아들 덕분”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
며 싱글맘 배우의 소감을 솔직하게 밝혀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해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으면서 아카
데미의 백인 중심주의에 균열을 낸 데 이어 올해는 윤여정이 연기상을,
중국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아시아 영화인들의 오스카상 수상이 아시아 증오 범죄가 잇따르는 시기에
이민자들의 노력과 창의성이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임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