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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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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 06:52 카테고리 없음

개아범이 말했다 “신났네, 신났어”... 어떤 인간 생각나잖아, 짜증나게

한현우 조선일보 문화전문기자

오늘 개아범에게 엉덩이를 제대로 한 대 맞았다. 그저 맨날 갉던

의자 다리를 또 갉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내 엉덩이를 찰싹 하

고 때렸다. 좀 많이 갉아먹긴 했다. 네모난 의자 다리가 거의 원뿔

이 돼 있었다.

개아범은 그 의자를 포기한 것 같았는데 그 지경이 된 걸 보더니 화

가 난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갉으면 이쑤시개로 쓸 수도 있을 것 같

은데 뭘 그리 난리인가.

개아범이 한눈 파는 사이 다시 가서 의자 다리를 물었는데, 이거 뭐야,

무지막지하게 썼다. 뭐라고 궁시렁거리더니 아주 쓴 약을 의자에 발라

놓았다. 이 약을 한 번 핥으면 하루 종일 밥도 쓰고 물도 쓰다.

인간들은 비싼 다이어트 약 대신 이 약을 하루 한 번 핥아 먹기를 권한다.

자몽 껍질에서 추출한 물질과 ‘쓴맛의 제왕’이란 약초 성분으로 만들었

다니 맛은 더럽게 없지만 몸에 해롭지도 않을 것 같다.

개아범이 서랍에서 목줄을 꺼냈다. 목줄을 매야만 밖에 나갈 수 있기에

나는 순순히 머리를 내밀었다. 앞으로도 하루 두 번 산책 약속을 안 지

키면 이쑤시개 조각 작업을 재개할 생각이다. 아파트에 이팝나무꽃이

하얗게 피었다.

맨날 다니는 산책길인데도 매번 냄새가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가로등과

벤치, 큰 기둥 아래에선 매번 새로운 개의 냄새가 난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개들이 매일 바뀌는 건 아니고 그들이 남기는 흔적의 냄새가 매번

다른 것이다.

그 냄새는 ‘왔다 감’ 같은 평범한 것부터 ‘내 구역이니 얼씬거리지 말 것’

같은 위압적인 것, 또는 ‘아, 여친 사귀고 싶어’ 같은 사연까지 다양하다.

바람이 세게 불면 다른 아파트에 사는 개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알 수 있다.

인간은 이렇게 뛰어난 후각을 이용하려고 개를 가축화했다고 한다. 기껏

해야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냄새 정도 구별하는 인간은 꿩이나 토끼 냄새

를 맡을 수 없었다.

개는 인간의 병든 조직이 내뿜는 화학 성분을 코로 감지해 암에 걸렸는지

여부도 판별한다. 그러니 인간들이 고기를 구우면서 개에게 참으라는 건

관타나모의 고문보다도 더 지독한 짓이다.

온갖 신나는 냄새를 맡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빙글빙글 돌면서 뛰었다. 오른

쪽으로 돌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돌았다. 그러다가 줄에 몸이 감겨 흙바닥

을 데구르르 구르기도 했다. 개아범이 말했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짜증이 났다. 최근에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들한테

신났네, 신났어 라고 말했다가 쌈박질이 난 걸 알기 때문이다. 신났네,

신났어는 인간이 개한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들으니 부아가

치밀었다.

도대체 인간들은 왜 자기들끼리 개 취급을 하는가. 나의 작은 개대가리

로는 알 수가 없다. 신났네 여사는 사과를 한답시고 “저의 혼잣말이 의

도치 않은 오해를 낳았다”고 했다. 그럼 원래 혼잣말의 의도는 뭐였을까.

최근에 산 잡코인이 100배 수익을 냈다는 문자라도 받았나. 그래서 “(저

사람들 저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났네, 신났어” 하고 혼잣말을 한 건가.

정치인은 공격하려고 사과한다. 문장은 일부러 엉망으로 만든다.

“저번에 사과했잖아!”라고 공격할 수만 있으면 된다. 덤불 속에 들어갔

다가 길고양이와 마주쳤다. 그놈은 입을 앙다문 채 쭉 찢어진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나는 갑자기 심박 수가 높아져 혀를 내밀고 헐떡헐떡

숨을 쉬었다.

고양이는 밧줄 같은 꼬리를 수직으로 세웠고 내 부실한 꼬리는 맥없이

내려갔다. 하여튼 폼 하나로 먹고 사는 놈, 하며 개아범한테 뛰어가는데

고양이가 말했다. 신났네, 신났어.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