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기억
그 하나
아침 출근 길 동부 간선 도로 장안동을 지나 중랑천을 건너가면서
늘 김밥과 물 한병을 이천 원에 파는 젊은이가 지난 겨울 추위에도
열심히 아침 장사를 하는 걸 약 한 달간 지나며 보아 오다가 한 번은
꼭 그 젊은이 한테 조그마한 도움을 주겠다고 별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 곳이 시속 80 킬로 도로여서 여간 잽싸지 않으면 젊은이
도우려다 뒷 차에게서 혼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싶어서 조심스러웠다.
어느 날 아침 7 시 20 분경 다행히도 그 곳이 밀리는 바람에 서행을
하고 있었고, 그 날도 여전히 그 젊은이의 “김밥”이라는 패말을 200
여 미터 전방에서 보였기에 운전석 창문을 활짝 열고 왼 손에 만 원
짜리 한 장을 흔들어 대었다.
아니나 다를 가 그 젊은이는 부리나케 물 한 병과 김밥 한 줄을 들고
뛰어 왔다. 나는 얼핏 “물만” 하고는 만원을 건네며, “거스름은
그냥 갖어”라고 말하고는 부지런히 앞차를 쫓아간 일이 있은 후로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그 젊은이의 부지런함을 속으로 칭찬해 왔는데
어떤 때에 그 친구가 연 이틀을 보이지 않아 걱정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둘
오랜만에 시청 앞에서 저녁을 하려고 전철을 타고 가는 중 청량리 역에서
어느 꼬부랑 할머니가 주렁주렁 장을 봐 가지고 타셨으나 빈자리를 찾을
낌새도 없이 주섬 주섬 바닥에 정리하는 걸 보고 나는 일어나서, “할머니
이리 앉아 가세요“ 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꼬부랑 할머니 옆에는 형편이 훨씬 나아 보이는 할머니가 있었고, 두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 나이에 지식들 부려먹지 아니하고 고생을 하셔 ?”
꼬부랑 할머니 왈, “자석 덜, 아무 짝에도 못쓰고, 내가 꿈적이는 게 제일
편혀” “이거 다 경동 시장에서 샀고 동네에 가져가서 팔면 나 혼자 밥
먹을 수 있어” 하면서 고쟁이 주머니에서 꼬깃한 천원 짜리 두 닢을
보이며 “장 보고도 아직 돈이 남어 있어” 하신다.
내게는 기막힌 현장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뒤돌아서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조그마하게 접어가지고, 꼬부랑 할머니 손을 펴 쥐며 남들
모르게 넘기고 그 손을 꼬옥 접어드렸다.
그 할머니 그냥 손의 감촉으로 지전임을 알었으니 조용하였으면 좋았겠는데
그걸 펴서 만 원임을 보더니 큰 소리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니 옆에 있던
할머니랑 다른 나이 많은 승객들이 박수까지 친다.
TV 속의 박수 문화가 전철에 까지 옮겨졌다니 모르는 이로부터 박수를 받기는
어려서 웅변대회 끼어서 가 처음이었고 실제 상항에서는 문화의 충격이었다.
기왕 벌어진 일, 나는 “할머니 오늘 저녁은 좀 좋은 것 사드세요”하였고
마침 전철이 어느 역에 정거를 하게 되어 나는 우선 그 현장을 피하고파서
부지런히 내리고 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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