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과 너무나 달라진 청와대 [청와대 풍향계]
2017년 5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대해 사과하는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상준 정치부 기자
“잠시만요. 여기서부터는 (방송) 카메라 좀 꺼 주시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6월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관 인선 발표를 마친
박수현 당시 대변인은 단상에서 내려와 기자들에게 이같이 요청했다. 방송 카메라
가 철수하자 박 대변인은 준비된 말을 이어갔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것으로 검증 과정에서 파
악됐으며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주민등록법 위반이 있다.” 주민등록법 위반
은 쉽게 말해 위장전입이다. 자랑거리는 아니니 영상 녹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는 점을 언론을 통해 미리 밝힌 것이다.
약 20일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해 5월 21일, 조현옥 당시 대통령인사수석
비서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지명을 발표한 뒤 “검증 과정에서 2가지를 확인했
다. 장녀의 이중국적과 위장전입”이라고 했다.
음주운전, 위장전입, 이중국적 등은 후보자의 인사청문 기초 자료만 보면 즉시 파악
할 수 있는 항목들이다. 당시 이례적인 ‘자기 고백’에 대해 한 청와대 참모는 “우리가
감춘다고 감춰질 사안이 아니지 않나.
그럴 바에야 국민에게 미리 고백하고 ‘그 대신 장관으로서의 능력을 보고 발탁했으니
양해해 주시라’고 설득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동의 여부는 보는 사람마다 다
르겠지만 솔직하기라도 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포함한 개각 인선 발표가 끝난 후 기
자들은 “오늘 발표한 후보자들은 다 7대 인사 원칙에 부합하느냐”고 물었다. 검증
과정에서 파악한 문제점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돌아온 답변은 “구체적인 사안들은 앞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검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였다. 일단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것이다. 지금과는 달랐던 2년 전의
청와대를 보여주는 장면은 더 있다.
2017년 5월 첫 인사를 둘러싼 부실 검증 문제가 확산되자 청와대 2인자인 비서실
장이 직접 나섰다.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어려운 말씀을 드
리려고 왔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
가 내놓는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께 죄
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정권이 출범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
를 넘나들던 때였다. 지지율만 믿고 버티겠다고 작정하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
래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사석에서 “사과해 봤자 더 두드려 맞는다는 내부 우려가
왜 없었겠나.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보여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
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 책임감과 합리적인 목소리가 있었던
때였다.
지금은 어떤가. 조 후보자의 동생, 전 제수씨, 딸 등과 관련한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랐던 22일 브리핑에서 청와대 관계자는 “말씀드릴 수 없다”는 말만 다섯 차
례 반복했다.
이번 개각의 검증을 총괄한 사람이 누구인지, 검증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나온 건
지, 도대체 검증을 제대로 하긴 한 건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청와대는 “일부 언론은
사실과 전혀 다른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면서도 그 사실이 뭔지는 결코 밝히지 않는다.
당연히 청와대가 사과에 나서려는 기색도 없다. 참모들과의 통화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유감이라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면 휴대전화 너머로 침
묵만 흐른다.
청와대의 침묵은 결국 대학가에 다시 촛불을 소환했다. 청와대가 ‘촛불 정신’을 내세
우며 호기롭게 출범한 지 2년 3개월여 만이다. 그 배경에는 이처럼 더 무책임해지고
공감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진 청와대가 있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