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촛불정부’ 첫 대규모 교수 시국선언에 담긴 절망과 분노
동아일보입력 2019-09-18 00:00
전국 200여 개 대학의 2000명이 넘는 전·현직 대학교수들이 “조국 법무
장관 임명으로 사회정의와 윤리가 무너졌다”며 조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 시국선언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
은 내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시국선언이 교수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학 사회가
교수 출신인 조 장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3년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시국선언 이후
사실상 처음 이뤄지는 대규모 교수 선언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정교모가 교수들에게 회람 중인 시국선언문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정조
준하고 있다.
교수인 조 장관 부부는 자녀 입시를 위해 부정직한 스펙을 쌓았고, 조 장관
딸은 고교시절에 대학원생도 어렵다는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
났는데도 조 장관을 임명한 것은 평등, 공정, 정의의 3대 가치를 허물었다는
것이다.
선언문은 또 이번 사태가 특권층이 온갖 편법적인 일을 행한 뒤에 죄책감도
없이 뻔뻔하게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시국선언은 작성자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람된 시국선언문을
읽고 공감한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서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시국선언에 많은 교수들이 동참한 배경엔 조 장관 부부를 포함한 일부 교수
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교수 사회의 성찰과 자성의 분위기도 반영됐을 것
이다. 조국 사태에 등장하는 교수들은 교수의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자녀들
의 스펙 품앗이를 하면서 끈끈한 카르텔을 형성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교수들의 일탈행위로 입시의 공정성이 흔들릴 경우 대학 사회의 기반인
도덕성과 신뢰성마저 무너질 수 있다. 조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촛
불집회가 대학 간 연대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교수 사회의 위기감은 더 커질
것이다.
교수들은 문 대통령에게 조 장관의 즉각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조 장관이
계속 버틸 경우 민심은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고 분노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권은 이번 교수 시국선언을 일회성 정치행위로 치부하지 말고
선언문에 담긴 대학 사회의 분노와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