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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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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 05:35 카테고리 없음

지도자의 무지와 편협이 나라 망친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늘 목 놓아 통곡하노라(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 1905년 11월 20일 장지연이 쓴 황성신문의 논설 제목이다.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이에 찬성하거나 막지 못한 조정 대신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실은 세계가 돌아가는 개화기의 진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당파적 대립과 보신적 판단에 밤을 지새우던 양반 귀족 세력에 대한

지탄과 경고를 담은 내용이었다.

지금 우리 앞에는 그 시기보다 더 큰 변화가 다가오고, 더 커질 기세다.

우호적 협력관계를 맺어 왔던 우방들도 명분에 기반한 조건 없는 선린

관계에 묶이지 않고,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행태로 돌아서고

있다.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를 헤집고 이념적·분파적 대립에 파묻혀 현재와

미래를 외면하고 있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작은 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경제를 가진 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근면·성실한 국민을 하나로

이끌며 세계를 읽고 앞을 내다본 지도자들의 혜안과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근년에는 적폐(積弊)란 명분 아래 과거를 부정하는 데 나라의

힘을 쏟아부었고, 이념을 매개로 한 붕당적·정파적 적대감과 집단 간

의 대립을 심화시켜 왔다.

 

전투적 양상으로까지 변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의 언행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현재 세대만이 아니라, 미

래 세대까지도 절벽으로 몰아가는 양치기 소년의 피리 소리가 될 수

있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의롭고 자애로운 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신라의 도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신라와 당(唐)

의 외교적·군사적 결맹(結盟)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한 흐린 판

단은 나라를 망하게 했다.

지금 한 명의 장관 임명으로 나라 전체가 극단적 대립에 빠져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찾아봤다.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으며, 지지

하지 않았던 한분 한분을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아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

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 해 전국적으로 고르게 등용하

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을 둘러싼 숱한 의혹을 교언(巧言)으로 넘기려는 사람

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고, 의혹에 불과할 뿐 불법은 확인되지 않

았다는 말로 아픈 국민의 가슴을 헤집어 놨다.

 

전임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에는 대통령이라고 예우할 게 아니라,

그냥 피의자로 다루면 된다면서 즉각 강제 수사를 촉구한다던

발언이 아직 기억에 생생한데도, 대변인을 통해 검찰이 절제

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바로 다음 날인 28일 토요일 오후, 검찰청 주변은 지지자들로 가

득 찼고 국민의 편 가르기는 극단으로 치달을 추세다. 우리의 길

을 다시 고전에서 찾는다.

 

순(舜) 임금이 우왕(禹王)에게 제위를 물려주면서 임금의 마음가

짐을 전하는 구절, 유정유일(惟精惟一)이 답이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로우나 도리(道理)의 마음은 잘 드러나지 않으니 한결같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대통령과 같은 나라의 지도자가 늘 새겨야 할 ‘가·나·다’는, ‘가까운

사람’ ‘나를 따르는 사람’만을 챙기고,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을

돌려세우는 상황을 만드는 게 아니다.

 

‘가슴을 열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다름을 인정’하고 다 같이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을 목 놓아 통곡하는 심정이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