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부에 세금 내기 싫다 |
이용식 문화일보 주필 의복과, 안장을 얹은 말은 본래 있는 그대로 써야 하며 새로 마련해 선 안 된다. 검소함이 목민의 시작이다.
노회한 아전들은 차림새가 사치스럽고 화려하면 씽긋 웃으며 ‘알 만 하다’ 하고, 검소하고 질박하면 놀라면서 ‘두렵다’ 한다. 대법원장 공관이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에 맞춰 호화롭게 치장됐음이 드러났다.
이탈리아 석재로 외관을 꾸미고, 가전제품과 가구도 싹 바꿨다고 한다. 재판 관련 예산까지 전용했다. 취임에서 입주까지 3개월 가까이 걸린 이유를 알 만하다. 국가 재물과 재정에 대한 대법원장 인식이 이렇 다면, 현 정권의 다른 인사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2200년 전에 한비자는 ‘공직자의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은 멸망 의 시작’이라는 상저옥배(象箸玉杯) 경고를 남겼다. 문재인 정부는 자 유민주주의 측면에서 역대 정부,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도 크게 다른데, 재정 부문도 그렇다.
이전 정부들은 재정 건전성을 중시했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예 산 중 조세 비중은 10% 남짓이었고, 90%는 미국 원조와 차입금이었 다. 독립국이지만 재정 주권은 없었다.
6·25전쟁 뒤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원조가 본격화했다. 원 조물품을 팔아 재정을 충당한 ‘대충자금’이 1950년대 말엔 세입의 절반을 넘었고, 1973년에야 없어졌다. 수 없었다. 1962년 파독 광부와 간호원 월급을 담보로 해 처음으로 차관 3000만 달러를 서독에서 도입했다.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그들 앞에 섰다. “우리 생 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 려줍시다. 열심히 합시다.
나도 열심히…”라며 눈물을 쏟았고, 광부들도 서로 부둥켜안고 우느 라 애국가도 따라부르지 못했다.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는 “독일 은 프랑스와 16번 전쟁을 치렀지만 2차 세계대전 뒤 악수했다.
한국도 일본과 그렇게 하라. 공산주의를 막는 길도 된다”고 조언했 다. 결국 일본 청구권 자금과 월남 파병을 활용해 포항제철, 소양강 다목적댐, 경부고속도로 등 산업화의 기초 인프라를 만들었다. 가 생겼다. 1997년 외환위기를 김대중 정부가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의 고통분담에다 공적 자금 투입을 가능케 한 재정 건전성 덕분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모두 복지를 확장했지만, 김 정부는 ‘생산적 복지’ 원칙을 지켰고, 노 정부 도 국가재정법 제정 등 방만 재정을 경계했다. 행해서라도 재정 지출을 늘리라고 다그친다. 타당성 조사도 건너뛰 고 수백억 원 프로젝트들을 밀어붙인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파탄으로 몰아놓고 예산을 퍼부어 땜질한다. 온 갖 코드 위원회와 공기업은 권력 주변 인사들의 생계용 빨대처럼 됐다. 천문학적 손실이 뻔한데도 탈원전을 고집한다.
인구는 감소하는데 공무원은 수만 명 늘리려 든다. 세금 내는 일자리는 줄이고, 세금 먹는 일자리를 늘리면서 고용 개선이라고 우긴다. 핵무 기 위협에도 북한에 퍼주지 못해 안달이다.
동맹 외교 실패에 따른 청구서도 날아들기 시작했다. 입으론 통일을 외치면서, 통일 대비에 필수적인 재정 건전성은 외면한다. 미래세대 에 부담을 떠넘기는 일도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이 큰소리친다. 세금을 물 쓰듯 하면서 툭하면 법인세 소득세 인상을 협박한다. 누가 흔쾌히 세금을 내고 싶겠는가.
재산세를 급속히 올리면서 양도세는 그대로다. 집 한 칸 일구고 은퇴 한 사람들에겐 그냥 값싼 집으로 가라는 ‘징발’과 다름없다. 중소기업 을 물려주고 싶어도 상속세 때문에 힘들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남아 로 탈출하는 행렬도 이어진다. 미국 독립전쟁이 그랬고, 동학농민운동도 가렴주구(苛斂誅求)에서 촉 발됐다. 그래도 납세 의무를 회피해선 안 된다.
국회에서 예산 심의가 한창이다. 누가 세금 도둑인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선거에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