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福'만 있는 집권 여당
조선일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文 대통령과 청와대만 보였던 2년 반… 불통 국정 운영엔 여당인
민주당 잘못 커 벌 받아야 하는데 '야당 복' 많아 답답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그래서 지난 2년 반을 떠올려 봤다.
그간 잘한 일, 못한 일이 다 있었겠지만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답답함
이었다. 국정 운영은 일방적이었고, 사회는 둘로 갈라졌고 대통령은 그중
한쪽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답답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게 되었고 이는 또다시 격한 갈등과 대
립을 부추겼다. 취임할 때 대통령은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은 점점 더 평범한 시민들에게서 멀어져 갔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났던 것처럼 보인다. 결국 그 답답함의
원천은 소통이 되지 않는 정치, 불통 국정 운영과 관련이 있다. 왜 그렇게 되
었을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청와대 중심 국정 운영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오로
지 문 대통령과 청와대만 보였다. 당도 장관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데 사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에 대한 접근은 소수 참모에게 제한되어 있고, 그들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야기는 좀처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청와대가 생각이 비슷
한 이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저잣거리 민심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는
어렵다.
이념의 편견을 갖고 바라보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측근들도 청와대 중심 정치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20
12년에도, 2017년에도 문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
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은 후에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은 오히
려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하지만 불통 국정 운영에는 '집권당'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잘못이 크다. 민심
흐름을 읽고 그것이 국정 운영에 반영되도록 전달하는 것이 집권당의 역할이
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당은 존재감이 없었다.
많은 국민이 힘들어하거나 분개하는 일이 생겨도 당이 나서서 그 민심을 대변
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문 대통령의 그늘에 숨어 지냈다. 민주당이 대통령
의 뒤에 숨어 지내면서 정쟁의 중심에 대통령이 놓이게 되었고,
야당 역시 무력해 보이는 여당보다 대통령을 직접 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정치의 질은 더 나빠졌다. 민주당을 질책하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당에서
나오는 소리는 노무현 대통령 때의 당정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내세우며, 청와대 정무수석직을 폐지했고 열린
우리당과 주요 정책에 대한 사전 조율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연정 제안,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 쟁점이 생길 때마다 당은 청와대와 다른 소리를
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 대통령을 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시기의 트라우마를 내세우는 민주당의 이런 변명은 듣기에 불
편하다. 솔직히 말해 옳은 소리 했다가 혹시라도 '찍혀서' 공천 못 받거나 정치
적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최근 들어 차기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나서야 당내에서 지도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다들 비겁했다는 말이다. 이해찬 대표 역시 이렇게
된 데 대한 책임이 크다. 국무총리까지 거친 7선 의원이지만 그의 정치적 미래
는 없다.
당대표 직이 그의 마지막 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이 당대표직에 자
신의 정치적 미래를 걸어야 했다면 과연 두 달 반 동안이나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조국 사태 때 당대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결국 지난 2년 반 동안 느껴온 답답함 속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비겁함과
이해찬 대표의 무능과 나태가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많은 사
람이 실망했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제 역할을 못 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책임 정치의 구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
에도 더불어민주당의 당 지지율은 자유한국당을 앞서고 있고, 민주당의 선거 전
망도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많은 사람이 느끼는 답답함은 바로 이 때문에
더 크고 강하게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지원 의원 말대로, 문 대통령은
여당 복은 없어도 야당 복은 있다고 해야 할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10/20191110015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