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깎아 나눠주던 70대 노인···“7700개 기증” 슬픈 사연
[중앙일보] 입력 2019.12.14 05:00
지난 10월 17일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에서 열린 밥상연탄나눔 재개식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이 저소득층에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 밥상공통체 연탄은행]
강원 원주시 일산동 대한노인회 원주시지회 사무실에는 나무를 정성스럽게 깎아
만든 지팡이 수백개가 쌓여 있다. 이 지팡이는 원주시 신림면에 사는 이명우(70)
씨가 10년 간 손수 깎은 것으로 최근 노인회에 기탁했다. 이씨가 손수 만든 지팡
이를 기탁한 사연은 이렇다.
원주 신림면 이명우(70)씨, 10년전부터 지팡이 만들어
제천 17년째 연탄기증, 보은 10년 넘게 장학금 기부 귀농인도
평생 목수일을 해온 이씨는 15년 전 폐 질환을 앓으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이
후 치료를 받으며 10년 전부터 지팡이를 깎는 취미가 생겼다. 처음 깎은 지팡이를
거동이 불편한 지인에게 선물했는데 반응이 좋자 이후 꾸준히 지팡이를 나눠줬다.
하지만 최근 건강이 악화하면서 10년 동안 공들여 제작한 지팡이 770개를 기부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6일 신림면행정복지센터에 350개, 대한노인회 원주시
지회 사무실에 420개를 기탁했다.
신림면행정복지센터는 현재 14개 경로당에 350개 지팡이를 모두 전달했다. 노인
회는 오는 17일 읍면동 노인회장을 통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씨의 부인은 “다리가 불편한 고향 분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동안 만
든 지팡이 모두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시 신림면에 사는 이명우(70)씨가 10년 간 손수 깎은 지팡이를 대한노인회 원주시지회 사무실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전해달라며 기탁했다. [사진 대한노인회 원주시지회]
얼굴 없는 천사 지난 4일 연탄보관증 팩스로 보내
연말 기부 천사들의 활약이 줄을 잇고 있다. 충북 제천에선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가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제천시에 따르면 지난 4일 시청 사회복지과에
“연탄보관증을 팩스로 보내겠다”는 전화가 왔다.
이후 제천의 한 연탄 판매업체에서 팩스로 보내온 보관증에는 연탄 2만장(약
1500만원)을 기탁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시청 담당자가 연탄 판매업체에
기탁자를 수소문했지만, 기탁자는 “제천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당부의 말만 전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제천시에는 연말이 되면 얼굴과 이름을 알리지 않고 연탄을 기부하는 아름다운
선행이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시 관계자는 “얼굴 없는 천사인 기탁자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며 “기부해주신 연탄은 난방 취약 계층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
도록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7년째 연탄 기부를 해 온 제천 얼굴 없는 천사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달라며 구입한 연탄 보관증 [사진 제천시]
연탄은행 현재 연탄 400만장 확보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이하 연탄은행)은 현재까지 400만장의 연탄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번 겨울 목표인 700만장까지는 300만장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액기부 운동인 ‘3일을 따뜻하게’에 참여하는 기부 천사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1억6000만원이 모금돼 연탄 20만장을 확보했다.
‘3일을 따뜻하게’ 운동은 한장에 평균 800원인 연탄을 12장 살 수 있도록 1만
원을 기부하는 운동이다. 연탄사용 가구가 하루 4장의 연탄을 쓰는 만큼 12장
이면 3일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연탄은행 대표 허기복(62) 목사는 “연탄 기부는 1월이 넘어가면 후원이 거의 들
어오지 않는다”며 “에너지 빈곤층이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선 아직
300만장이 부족한 만큼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 사는 강동희(67)·이호복(62)씨 부부는 지난 12일 장학금 500만원을 마로장학회에 기탁한 모습.(왼쪽부터 구상회 의원, 이영순 마로면장 강동희, 이호복 부부, 한정환 주민자치위원장)[사진 보은군]
2008년부터 매년 장학금 기부 총 4000만원
이와 함께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 사는 강동희(67)·이호복(62)씨 부부는 지난
12일 장학금 500만원을 마로장학회에 기탁했다. 이들 부부는 2008년부터 매
년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장학금 기탁 총액은 4000여만 원에 달한다.
강씨 부부는 10여 년 전 서울에서 마로면 오천리로 귀농해 대추와 호두농사를
짓고 있다. 귀농 초기에는 수입이 많지 않았지만, 농장 운영이 안정화하면서
기부 첫해 50만원, 이듬해 100만원, 400만원으로 기부금을 늘렸다.
마로장학회가 출범한 2013년부터는 매년 500만원씩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아내 이씨는 “제2의 고향인 마로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남편
의 권유로 초등학생 장학금 지원을 시작하게 됐다”며
“앞으로 마로장학회가 기금을 조성해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원주·제천=박진호·최종권 기자 park.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