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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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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1. 06:36 카테고리 없음

 

 

 

 

◆2019/12/18(수)그때 내 나이 몇이었던가(597)

 

 

 

그때 내 나이 몇이었던가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월남할 목적으로 평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으로

갔던 것이 1946년 6월 중순의 일이었다. 원산의 어느 여관에서 하루 밤을

자고 일어나 그 여관에서 마련해준 아침 밥상을 대하였다.

 

물이 좋은 고등어 한 마리가 밥상에 올라와 있었는데 어찌나 맛이 있었는지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평양이라는 도시가 바다에서 매우 가까운 곳은 아니기 때문에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물 좋은 생선을 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의 밥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내 기억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시장으로 가서 마른 멸치 한 보따리를 사서 짐처럼 꾸

려가지고 원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철원으로 나왔다. 그 때는 남쪽으로 가는

길을 통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장사꾼 행세를 하기 위해서 멸치 보따리가

필요했다. 기차는 많은 승객으로 붐비고 있었지만 무사히 철원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철원에서는 경기도 연천을 향하여 떠났는데 38선을 넘던 그날 밤은 달빛도

없는 칠흙 같은 밤이었다. 우리 일행은 연천을 거쳐 미군 수용소가 있는 곳

에 인도되어 DDT 세례를 받았다.

 

한국인 경찰이 있긴 했지만 모든 절차는 미군 병사들의 지시대로 진행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38선을 넘어 북으로 가본 적이 없다. 동지가 가깝고 성탄의

노래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하니 며칠 있으면 내가 아흔셋이나 된다.

 

추위와 함께 “아! 나, 이제 늙었구나”를 실감한다. 주희의 말대로 “이게 누구

의 잘못인고(是誰之愆)!”

 

 

김동길

 

 

◆2019/12/16(월) 가장 시급한 과제 (595)

 

가장 시급한 과제

 

"공사다망하다"라는 말이 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할 일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에게 얼마나 할 일이 많겠는가.

 

우리 헌법대로 3권이 분립되어 있는 나라라면, 국회 의장과 국회 의원들도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물론 법으로 한 나

라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을 맡은 사법부의 인사들도 날마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납세자들의 세금을 받아 그것으로 나라 살

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공직자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가장 먼저 있어야 할

일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First thing first"! 우리말로 옮긴다면,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때문에

먼저 할 일을 먼저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학문의 세계에도 그런 교훈이 적용된다. '四書三經(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삼경: 시경, 서경, 주역)'을 공부하기 전에 천자문을 먼저 습득해야

할 것이다.

 

천자문 첫머리에 나오는 '天.地.玄.黃'의 뜻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논어를 읽

는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옛날부터 "논어를 읽지만 논어를 모른

다"라는 비방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처지에서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아야 하는데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오래 살

다 보니 나는 깨달아 알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도, 시민들도, 통치자들에게 있어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정직함

이다. 구악의 뿌리를 뽑는 일도, 적폐를 청산하는 일도 다 거짓을 소탕하는 일

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김동길

 

 

◆2019/12/11(수) 꽃이냐, 방울떡이냐 (590)

 

꽃이냐, 방울떡이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식물 중에 단팥죽과 방울떡이 있었다. 방울떡의

본명은 당고인데, 대나무 꼬치에 동그랗게 빚어 만든 달콤한 떡을 끼어서

파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배운 일본 속담 하나가 “꽃보다 방울떡”이

었는데, 너무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방울떡을 꽃과 비교하는 그런 심리

상태가 괘씸하게 여겨졌다.

 

이 두 가지 일을 대등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보릿고개

라는 춘궁기를 겪어야 했던 매우 배고픈 백성이었다.

 

꽃과 떡을 비교할 생각조차 못하고 살던 시절이었다. 또 다시 경제가 말이

아니라고 하긴 하지만, 한국의 옛날 선비들처럼 꽃을 사랑하고 꽃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국민이 된 것도 사실이다.

 

부대찌개도 먹고 족발도 먹고, 불고기도 좋아하게 된 것 뿐만 아니라 미식가

들도 나타나 제철 생선회를 즐길 줄 아는 국민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꽃장사

가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니 이제는 일본인도 비웃을 만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낱말이 힘이 있어 보인다.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잘못된 권력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확실해도 더 높은 잘못된

권력이 그걸 계속 두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란 밥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정치적 곡예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잃으면

꽃도 없고 밥도 못 먹는 한심한 국민으로 전락할 것이다.

 

김동길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