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국립 운동권 미술관'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19.12.28 03:16
미술관에 별 관심 없던 사람도 해외에 가면 미술관을 필수 코스로 들르곤 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 많기도 하지만 편하게 찾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유다. 수백
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가득 찬 뉴욕 맨해튼에는 '뮤지엄 마일(Museum Mile)'
이란 거리가 있다.
1.6㎞ 길이 대로 양쪽에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뉴욕시티뮤지엄 등 9개 미술관
이 늘어서서 관람객을 맞는다. 파리의 루브르나 런던의 테이트모던 역시 도심 한
가운데 있다.
▶1969년 경복궁에서 문 열고 4년 뒤 덕수궁으로 옮겼다가 86년 과천 산속으로
들어간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런 면에서 최악의 입지였다. 2013년 옛 기무사 자리
에 서울관이 개관해 큰 기대를 걸었으나 관람객 수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서울·과천·덕수궁·청주관까지 합칠 경우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국립현대미술관 관
람객은 올해 268만명으로 추산된다. 2018년 루브르(1020만명), 메트로폴리탄
(695만명), 테이트모던(586만명)에 비해 초라한 숫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아 연 전시 '광장'이 혹평을 받고
있다. 독립운동가 글씨는 위작 의혹이 불거져 전시 도중 교체됐다. 만해 한용
운의 시구도 뒤늦게 인쇄 복제본임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국립미술관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정식 사과 없이 슬그머니
작품을 바꾸고 표기를 추가해 또 뒷말이 나왔다.
▶특히 과천관 전시는 운동권 해방구 같은 분위기다. 중앙홀에 걸개그림 '한열이
를 살려내라'가 걸렸고 양옆엔 거대한 노동해방도와 전봉준 그림이 걸렸다. 이한
열의 운동화와 당시 택시였던 브리사 자동차도 세워놓아 50주년 전시인지 운동
권 홍보관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 전시엔 세월호와 북한 관련 작품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평단과 언론에서 혹평
이 쏟아졌다. "정권 코드에 맞춰 만세를 외치는 전시"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선동
이지 미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월 민중미술 계열 평론가를 관장에 앉히면서 이미 예견됐다. 북한을 "공
공미술의 천 국이자 기념비적 조소 예술의 나라"라고 칭송한 이 사람은 당시 후보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고 탈락했다가 이유도 모를 재평가를 거쳐 신임 관장에 임
명됐다.
올해 주요 사업으로 '북한과 교류'를 꼽더니 아무 성과도 못 냈다. 한 나라 문화의
얼굴인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정권 코드 인사가 들어앉아 관객을 위한 뛰어난 전시
를 고민하기는커녕 운동권 미술관을 만들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7/20191227031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