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으면 옳은 것도 관철 못 한다
지난해 정권의 옳지 못한 시도 광화문광장에서는 막아냈으나 여의도 국회
에서는 막지 못해 정치는 옳은 것을 관철하는 힘… 올해 총선이 그 계기 돼야
송평인 논설위원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전세 사는 사람들은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집값
잡는다고 한 조치가 이제는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집값은 못 잡아도 좋으니
제발 전셋값이라도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죽어나는 건 집 없는 사람이고 자영업자이고 아르바이트생이고 중소기업이고 신
생 혁신기업이다. 살판 난 것은 서울 등 수도권 요지에 집을 가진 사람들이고 비
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주52시간 노동제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는 대기업과 공공
기업에 다니는 근로자들이다.
혁신은 없다. 다른 나라는 다 근미래(近未來)의 전기차로 가는데 우리만 올지 말
지 알 수 없는 원미래(遠未來)의 수소차로 가고 있다. 정부가 바이오산업의 육성
을 외친 올해 바이오산업의 주가는 오히려 추락했다.
공산당이 만사를 통제하는 중국마저 화끈한 규제개혁을 하는데 우리만 기득권
조합이나 노조에 발목 잡혀 지지부진이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정책 결정에 대한
시비로 감옥에 가거나 좌천한 선임자를 본 공무원들은 재량을 발휘할 생각을
않는다.
일본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시비이고 중국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굴욕적 처신이다.
중국은 사드 보복에 무릎 꿇고 미세먼지조차 자기 탓하는 걸 보면서 한국은 무시
해 버려도 되는 나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니 ‘홍콩과 신장위구르 사태는 중국 내정 문제’라는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중국 관영 언론이 써대는 것 아니겠는가. 중국 외교부가 고쳐줄지 지켜보겠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센카쿠열도 갈등을 극복하고 급속히 호전되고 있다. 일본
쪽에서는 일본인이 한국보다 중국을 더 좋아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중국도
일본도 동북아시아를 한중일 삼국지(三國志)가 아니라 중일 양국지(兩國志)로
이끌고 싶어 한다.
하수(下手)에게는 한일 관계와 한중 관계의 소국(小局)만 보이고 중일 관계의 대
국(大局)은 보이지 않나 보다. 새로운 규칙은 그 규칙을 만든 자에게 먼저 적용돼
서는 안 된다는 오랜 법언(法諺)이 있다.
적폐청산이라며 사화(士禍) 수준의 수사를 하면서 피의자를 공개소환하고 피의
사실을 밥 먹듯이 유포하고 수갑까지 채워 수치를 주던 정권이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새로운 검찰사무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피의자 조국과 그 가
족에게 제일 먼저 적용했다.
그러고도 파렴치하게 공정을 외치고 있다. 이런 정부에 무슨 공정한 검찰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공수처에서는 조국, 유재수, 송철호, 그 윗선에 대한 수사가
가능할 것인가. 공수처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그런 수사가 가능하지 않다는
데는 별 의견 차이가 없다.
지지하는 자들은 그런 수사를 왜 하냐고 뻔뻔하게 물을 것이고 지지하지 않는 자
들은 그런 수사 하지 말라고 만든 게 공수처가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
이유야 뭐라고 보든 그런 수사는 하지 않는 게 바로 공수처다. 그래서 정권의 보
위부인 것이다.
건국 100주년이 제야 속으로 사라졌다. 가야사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고 법률
가가 되지 않았으면 역사가가 됐을 것이라는 아마추어 역사가는 일제 식민지배
의 한가운데인 1919년을 건국이라고 불렀다.
잃은 것을 잃었다 하고 얻은 것을 얻었다고 하는 사회는 걱정할 게 없다. 나라를
잃은 것을 나라를 얻었다고 하니 그 역사의식이 송두리째 걱정스러울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김정은의 말만 믿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비핵화의 진의가 있다고 전달한 것이 베트남 하노이 북-미 회담을 좌초
시킨 근본적 원인이다.
시대의 중요한 문제는 말이 아니라 피와 철에 의해 결정됨에도 일방적으로 군사
훈련을 중단하고 경계태세를 허물었다. 어리석은 송양공(宋襄公)이 따로 없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는 전멸이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추락시키고 부동산 값 하나 잡지 못하는 무능한 정권이 제
분수도 모르고 나라를 정초하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땀과 피와 철로 세운 것
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부수는 건 한순간이다.
힘이 없으면 옳은 것도 관철하지 못한다. 정치는 옳은 것을 관철하는 힘이다. 좀
더 겸손하게 말하자면 옳지 못한 것을 막는 힘이다. 광장에서는 옳지 못한 것을
막아냈으나 국회에서는 막아내지 못했다. 올해는 총선이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