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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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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16. 06:18 카테고리 없음

고초 겪은 건 曺國 아닌 국민과 法治다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법학

새해 들어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다기에 국민에게 희망과 포부를 갖게 해주기를 고대하면서 듣고 있다가 목에 걸리는 말이 있어 몹시 불편했다. 구태여 형사법의 법리나 법규를 따지지 않더라도, 흐르는 물과 부는 바람을 거스르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이 조국(曺國) 교수가 지금까지 고초를 겪은 데 대해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한 말이다.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이 조 교수가

고초를 겪었다고 한 표현도 쉽게 이해되지 않고, 그래서 마음의 큰 빚을

졌다는 말도 이해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가 고초를 겪었다면 모를까, 범죄 혐의자가 고초를 겪었다는 표

현은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대통령이 공적인 영역에서의 발언으로 특정인

에 대해 마음의 빚을 졌다는 사사로운 감정을 표현한 것도 매우 부적절하

다.

 

더구나 국회에서 몇몇 법안이 통과됐으니 이제 조 교수를 놓아 주자는 말도,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통과된 검·경 수사권 조정을 포함한 개정 형사소

송법과 공수처 설치 관련 법 때문에 조 교수가 억울함을 당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또,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검찰이 어떤 사건은 열심히 수사하고, 어떤 사건은 수사하지 않는 것이

수사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했다. A, B도 탈세했는데 왜 C 탈세범

만 수사하느냐는 치기어린 불평 같다.

 

수사기관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을 다 수사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나, 한정된 인적·물적 조건인 만큼 어차피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역대 검찰이 하지 못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우선적으로 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게 아니라, 박수 갈채를 받을

일이다.

검찰의 수사권과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은 공히 존중돼야 한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사고는 수평적이고 탄력적인 사고가 아니라, 상

당히 수직적이고 경직된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인사 의견을 말하라고 한 데 대해 총장이

장관의 인사안(案)을 보자고 한 것이 인사 프로세스에 역행한다는 것

이다. 검찰총장이 상위직인 법무부 장관에게 항명이라도 한 것처럼,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침해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검찰청법 제34조는 법무부 장관이 검사의 보직을 대통령에게 제청할 때

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 외압

행사를 막고 자의적인 인사권 행사를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2003년 당시의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과의 상의 절차를 생략한 채 검찰

인사를 단행한 것이 논란이 돼 그해 말 국회에서 검찰개혁법안의 하나로

재석의원 만장일치 찬성으로 통과된 규정이다.

법무부 장관은 취임 6일 만에 총장과 협의 없이 검찰을 통제하기 위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결코 수사권을 존중하는 인사권 행사로 보

이지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은 14일 회견 때 인사 프로세스를 거론하며

장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통령이 아직도 검찰개혁이 요구된다고 하고 국민 다수가 검찰개혁에

관심을 갖는 데는 어찌 보면 검찰의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인 면도 없

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력도 개혁의 명분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검찰을 양산하고자 하는 욕심을 지양(止揚)해야 한다.

바라건대, 대통령이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에게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는데, 이때의 조국은 특정인이 아닌 우리 대한민국

이어야 한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