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이 불가능하니 대응에 나선 사람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
퇴근길 버스 안에서 기사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버스에 비치된 무료 마
스크를 가져가는 일부 승객 때문이었다. ‘공짜 마스크를 가져가는 게 뭐
가 잘못이냐’는 승객과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왜 굳이 가져가느냐’는
버스기사가 실랑이를 벌여 버스 안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요즘 한국 사회는 이렇게 마스크 한 장에 다들 예민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예전 같으면
700∼800원 하던 마스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일부 온라인에서는 KF94 방역용 마스크 가격이 장당 4000원을 넘어섰
다. 더 큰 문제는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사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스크 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답답해진 사람들은 저마다 무리
를 지어 마스크 제조 공장에 개별적으로 주문을 넣기도 하고, 필터 원단을
사서 직접 마스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시간이 날 때마다 곳곳을 돌며 마스크를 구하러 동네 약국이나 주
민센터를 순회하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마스크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란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진 원인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불안은
불만과 불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이은 품절 사태로 소비자가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중국으로는 상당량의 마스크가 수출되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대구의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선 모습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으로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마스크 상
자들과 오버랩되며 소비자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비난이 일자 정부는 당장 판매업자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고 27일부터
생산량의 절반을 우체국이나 하나로마트 등 공적 판매망을 통해 판매
하겠다고 수습했다.
이마저 정부의 성급한 발표 탓에 마스크가 적재적소에 공급되지 않아
이날 마스크 몇 장 구하기 위해 매장을 찾은 시민들은 빈손으로 돌아
가야 했다.
마치 코로나19를 예견한 듯 새로운 바이러스가 중국의 박쥐에서 시작
됐다는 내용의 영화 ‘컨테이젼’에는 공포에 지친 사람들이 사재기와 약
탈에 뛰어드는 모습이 나온다.
바이러스 특효약이라고 소문난 개나리꽃 치료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은 갑자기 50개만 한정 판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약국
을 턴다.
여기에 일부 지역의 봉쇄 사실을 지도부가 미리 알고 자기 가족을 대피
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평범한 시민
들이 폭군으로 변하는 건 이렇게 순식간이다.
궁지에 몰리면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 아직 백신도 개발되지
않았고,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사람들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수단으로 마스크가 필요하다.
그런데 마스크 가격은 물론이고 공급마저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
를 보며 ‘마스크 값 하나 제대로 못 잡는데 바이러스는 어떻게 잡겠느냐’
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마스크 대란이 하루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불안이 분노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일지 모른다.